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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로포비치/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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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로포비치/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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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티슬라프ㆍ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는 힘에 차있었다. 74년 소련에서 망명해온 이 63세의 첼리스트는 워싱턴 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된지 올해로 14년이 됐다. 그의 음악계 데뷔 50주년일인 10월4일,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청중은 열렬한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39번,쇼스타코비치의 첼로협주곡 1번,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 당당하게 무대에 나온 로스트로포비치는 지휘봉을 들더니 힘차게 음을 찌르고 끊고 끌어올리고 내렸다. 왼손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옮기면서 약간 구부정한 자세인채 상반신만으로도 음악의 무게를 이겨가는 듯한 인상이었다.모차르트의 1악장(알레그로)이 끝나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그는 기침소리와 자세를 고쳐앉는 소음이 그치지 않자 자꾸 객석을 노려보았다. 청중의 소연이 멎은 뒤에는 다시 돌아서서 꿈꾸듯 노래하는 2악장(안단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18세 소녀 웬디ㆍ워너가 협연한 쇼스타코비치의 2악장 종반부에 첼로의 긴 독주가 계속될 때 로스트로포비치는 뒷짐을 진채 2년전부터 가르쳐온 제자의 솜씨를 완상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4번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음악답게 극복과 완성의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여행의 피곤 때문에 엄습하는 잠을 참으면서,뒷자리 여성의 지독한 화장품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이겨가면서 대가의 지휘를 감상했다. 한국의 어떤 음악평론가는 수상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깊이가 없고 경박한 인상을 준다」고 평했지만 겨우 레코드로 그의 연주를 들어본 음악문외한이 지휘모습까지 본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워싱턴 시민들은 로스트로포비치가 대단한 평판을 받지 못해온 창단 60년의 워싱턴필을 세계정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믿고 있었다. 정말 그런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어지간히 「마에스트로 로스트로포비치」를 자랑스러워 하는 인상이었다.

일정구역 안에는 음식물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공연이 시작되면 지각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들여보내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만 인상적인 일이었다.

한 정부기관의 여직원은 월요일과 목요일 주2회 이곳에 나와 표를 받고 청중을 입장시키는 허드렛일만 하면서도 『돈은 조금밖에 못 받지만 아주 보람있다』고 자랑했다. 그녀는 유명 연주가들을 가까이서 보며 음악속에서 생활할 수 있음을 행복해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그 자신만의 탁월함으로 훌륭한 지휘를 해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가와 음악을 아끼고 애호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그의 지휘봉에 힘을 넣어주고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다.<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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