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각종 구실 “47% 이상 인상”/안보 볼모로 대한 「불황전가」도/한국측 협상기술 부족… 예상 못해/국제정세 따라 대폭수정 가능성한국 공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차세대전투기사업(KFP)이 기술이전 수준과 가격 등을 둘러싸고 한 미간에 난항을 거듭하다 마침내 우리 정부가 전면 재검토를 선언하고 나섬으로써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종선정 과정에서부터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KFP사업은 지난해 연말 기종이 맥도널 더글러스사(MD)의 FA18 호넷전투기로 결정된 이후에도 양국 정부간 합의각서(MOU) 체결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대응구매비율 문제,항공기탑재 컴퓨터기술 등을 포함한 최첨단 기술이전문제,가격문제 등으로 심각한 마찰을 빚어왔다.
이 가운데 대응구매와 기술이전 문제는 대체로 합의를 이루었으나 마지막 계약단계에서 가격에 대한 현격한 의견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이 계획의 전면 재검토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KFP사업은 우리 정부가 3조4천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미군의 점진적인 철수에 대비한 전력증강과 함께 첨단기술 산업파급효과가 큰 항공우주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야심찬 계획인만큼 이 사업의 재검토선언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또 우리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을 추진해옴으로써 행정능력 미숙과 협상기술 부족 구체적 군수산업추세에 대한 정보부족 등 숱한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가격협상◁
정부는 지난해 12월 KFP사업의 기종을 FA18로 선정하고 93년부터 98년까지 1백20대를 구매 또는 공동생산키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 가운데 12대는 완제기로 구매하고 36대는 주계약 업체인 삼성항공이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하며 나머지 72대는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 대한항공이 공동으로 면허생산토록 결정됐다.
기종선정 당시 MD사측이 제시한 가격은 완제품 도입기를 기준으로 해서 3천3백만달러였고 전체로는 3조4천억원에 해당하는 47억달러 규모였다.
그러나 MD사는 최근 계약을 앞두고 대당 47% 가량 증가한 4천2백만달러를 요구,전체적으로 1조6천억원의 예산이 더 소요될 형편이 놓이게 됐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전투기 가격에 임금ㆍ물가상승 등 원가상승요인이 있고 ▲한국측에 제공될 전투기는 협상단계에서 생산되던 전투기보다 신형으로 성능이 향상되며 ▲전투기 장착 무기체계가 달라지는 등 옵션이 변경되고 ▲한국측의 의사가 반영된 기술이전분야가 고도의 첨단기술로 기술이전료가 비싸다는 등의 이유를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측은 『인플레 요인과 옵션변경,기술이전료를 모두 고려한다 해도 40% 이상 인상된 가격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국방예산삭감 등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같이 턱없이 높게 책정된 가격으로는 KFP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한 입장에 처해있다.
고도의 첨단제품인 전투기 가격은 원래 부르는 게 값이라고는 하지만 기술이전료 등의 항목에서 미국측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일부에서는 최근 동서 화해무드로 최첨단의 고가전투기 수요가 줄어든 데 따른 미국 군수업계 불황의 부담을 대한 전투기 판매에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기술이전협상◁
정부는 KFP사업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국가적 사업인만큼 FA18 전투기 도입과 공동생산과정에서 미래의 첨단산업인 항공우주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기술축적의 계기로 삼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전투기 선정과정에서도 전투기의 전투력에 못지 않게 기술이전효과에 비중을 두었고 미국정부나 MD사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전을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기종이 선정된 뒤 협상과정에서 미국측은 54개 항목 중 비교적 기술수준이 낮거나 부가가치가 적은 동체 제작기술 등에는 쉽게 합의를 해주었으나 첨단기술 이전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특히 고성능전투기 제작에 있어서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소재와 레이더항법장치,전투기 탑재용 초고성능 컴퓨터제작기술 등이 쟁점이 되었다.
결국 신소재 합성기술이전은 우리 정부 요구대로 양보를 받아냈으나 항공기를 향해 발사되는 레이더파를 역으로 추적해 적의 레이더기지나 지상의 대공포기지에 선제공격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자방해장치(ECM)와 컴퓨터 기술 등 핵심적 기술은 끝내 이전합의를 받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밖에 협상과정에서 대응 구매비율이 큰 쟁점으로 부각됐었다. 미국측은 기종선정과정에서 합의한 대응구매(오프셋) 비율 30%에 면허생산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우리 정부는 『기술지원 및 기술이전료를 지불한 면허생산을 대응구매비율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결국 우리측의 의견대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제점◁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국가적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당국은 결국 불과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을 드러낸 셈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어느 정도 가격이 오를 것은 예상은 했으나 그처럼 턱없이 오를 줄 몰랐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FA18의 90년도 미 정부구매단가가 무장가격을 제외하고 전투기 자체값만 해도 3천7백만달러였으며 91년 구매단가는 5천만∼6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해외판매가는 스위스에 제시한 가격이 8천만달러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난해 연말 제시된 3천3백만달러를 기준으로 협상을 해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 협상과정을 일체 비밀에 부쳐 여론의 감시나 각계의 의견수렴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밀실협상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 안보상황을 볼모로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미국측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대미협상 기술의 미숙,국제적 군수산업 추세에 관한 정보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망◁
이종구 국방부 장관이 KFP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하고도 전력증강사업을 중단하거나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한 만큼 전투기사업은 어떤 형태로든지 추진될 것은 명백하다.
특히 최근의 페르시아만사태 등에서 보듯이 전세계적인 긴장완화 추세 속에서도 국지적 분쟁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군관계자들의 일반적 인식인만큼 전투기사업은 큰 수정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또 FA18기 조립 및 공동생산을 예상해 우리나라 항공산업계에서 쏟아부은 투자 등을 감안할 때 기종을 바꾸거나 사업자체를 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 및 동북아 정세의 변화가 차세대전투기 사업내용에 상당한 수정을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 장관도 FA18은 북한이 보유하는 미그29기에 대응하는 것이며 북한이 앞으로 미그29기를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소련이 추가로 얼마나 미그기를 북한에 제공할 것인지 등에 대한 예측이 전투기 사업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로 이같은 변수가 이번 우리 정부의 KFP사업 재검토선언이 단순히 협상을 위한 엄포라고만 볼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이계성 기자>이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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