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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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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더 가까워진 2백만동포의 어제와 오늘:16)

입력
1992.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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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부작용(상)/과소비… 향락… 성문란… “전통 위기”/연변 1천여 가라오케 밤마다 북적/“안쓰고 안입고 돈모으기”는 옛말/젊은이들 서구유행 모방병… 옷·머리치장 신경「나의 손은 그녀의 막는듯하나 무기력한 손을 밀며 흰 적삼의 단추를 벗겼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나를 심하게 자극한다.… 그녀의 입술을 감빨았다. 달콤했다… 몸이 끓어 오른다. 나는 그녀의 몸위에 엎드렸다.… 나는 아래에 걸친 모든 것을 단번에 걷어내렸다」

하얼빈의 조선민족 예술관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예식 「송화강」 92년 제1기호에 실린 단편소설 「빛바렌 사랑」에서 정사장면만 뽑은 것이다.

중학시절에 사귀기 시작한 첫 사랑의 여인 정희를 10년만에 우연히 만난 주인공은 칸막이가 쳐진 「우의카페집」에서 커피와 포도주 맥주를 마시고 입을 맞춘다. 정희는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최진희의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부른다. 만취한 주인공이 잠에서 깬 곳은 정희의 고모집이었다.

통속소설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긴 하지만 이 작품은 자유연애와 성개방,새로운 소비생활,한국가요의 대유행 등 요즘 중국조선족의 사회현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보다 더하다. 「창문을 여니 똥파리가 먼저 들어온다」는 중국 조선족의 말 그대로 개혁·개방과 함께 전에 볼 수 없었던 갖가지 부작용이 빚어져 사회문제로 커져가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는 성의 문란,향락과 과소비,이혼과 범죄의 증가,황금만능풍조,빈부차와 3D기피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성의 문란은 유흥·향락업소을 중심으로 번져가고 있는데 「아가씨를 밝히는」 한국인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현재 자치주의 가라오케 업소는 1천여군데로 대부분 조선족이 경영하고 있다. 연변에 온 한국인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아가씨를 찾고 50원에서 1천원 까지 많은 인정(팁)을 뿌린다.

칸막이가 쳐진 가라오케 업소에서 손님들은 서울에서와 똑같이 아가씨들과 즐긴다. 연길에는 수시로 실시되는 단속의 눈을 피해 가정집에서 벌어지는 「비밀요정」도 있다.

9.3자치주성립 40돌을 맞아 연길시가 대대적 단속을 벌이던 92년8월 무렵에는 택시로 30분거리인 용정의 가라오케에 찾아가 즐기고 올 만큼 연길사람들의 밤생활은 달라졌다.

훈춘의 미장원에서 일하다 집어치우고 용정의 가라오케 업소에 취업한 이모양(22)은 한달에 3천원 정도를 벌어 집에 1천원을 보내고 나머지 돈으로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고 있는데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유흥업소 아가씨들의 월수입은 일반 근로자들의 3∼5배나 돼 농촌 처녀들의 도시유입이 급증가고 있다. 인물이 반반하면 가라오케나 술집에 가고 좀 처지면 식당복무원으로 들어간다.

연변에서는 술집의 「색정봉사」를 강력하게 단속,최근 50여곳을 영업정지 했으나 매춘·윤락은 갈수록 번창하고 있다.

유흥업소의 이용자는 대부분 개체호이다. 월수입 2백∼3백원인 일반근로자들은 술집출입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엔 회사돈으로 먹고 마신 뒤 「접대비」로 처리하는 사례가 많다. 친구 3명과 함께 용정의 술집에 온 김모씨(35·공원)는 맥주 15병(병당 5원) 북한산 맛살1접시(20원) 잣 해바라기씨 땅콩(각 10원)등의 안주를 먹고 1백50원을 냈다. 아가씨 4명의 팁 2백원은 별도이다.

개방물결의 여파로 종전의 단일화된 소득체계가 붕괴되면서 중국 조선족은 극심한 경제적 아노미현상을 겪고 있다. 주택의 사유화가 인정되자 집치장에도 과소비 바람이 거세다.

서울에 다녀온 사람들은 10만원짜리 집에 2만∼3만원을 들여 알루미늄 새시를 하고 화려한 벽지로 도배를 하는 것이 유행이며 농촌에서도 월3∼4푼의 고리대를 얻어 벽돌집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

향락과 과소비로 인해 조선족의 저축률은 극히 낮다. 「한족은 옷차림이 남루해도 알부자,조선족은 벽돌집에 살아도 빚더미」라는 말이 있을 만큼 조선족은 돈이 좀 모이면 술과 도박 등으로 다 써버린다.

만원호(1년에 1만원을 버는 갑부)는 개방초기의 유행어였을 뿐 지금은 십만원호는 돼야만 행세를 할 수 있고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흥청망청 돈을 쓰게 만든다.

중국 조선족이 돈맛을 알게 된 것은 한국나들이가 시작된 80년대후반기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의 주된 화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는가」이다. 연변대의 한 교수는 『중국전체가 돈독이 올라았다』며 『눈이 충혈돼 돈밖에는 보이는 게 없는것 같다』고 개탄했다.

과거에 인텔리겐치아 군인 등을 선호하던 조선족 처녀들도 요즘은 돈잘 버는 남자를 신랑감으로 선호한다. 장춘의 한 의대생(20)은 『가정이 부유하고 돈 잘벌면 대학을 안나와도 좋습네다』라고 말했다.

자연히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3D)은 기피하게 된다. 백두산에 이르는 넓은 도로나 도문­혼춘간 철도공사는 모두 한족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변대 김동훈교수(51·조선어문과)는 돈버는 일에만 매달려 힘들고 알아주지 않는 구비문학연구에 종사하려는 젊은이들이 적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학과선택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유용성 실용성이 가치판단의 척도가 됨에 따라 최고 인기학과 이던 조선어문과 보다 종전에 천시되던 컴퓨터 경영 영문학과의 인기가 훨씬 높아지고 있다.

연변의 젊은이 사회에서는 청바지 「당꼬바지」가 유행이며 2백원(3만원)이하 바지를 입으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어렵다.

5백원짜리 가죽점퍼도 1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났다고 안입어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대신 입는 일이 생긴다.

담배의 경우에도 1원20전인 중국담배는 제쳐두고 10원이나 하는 말보로를 사서 피우는 젊은이들이 많다.

재학생 모두가 기숙사생활을 하는 연변대에서는 부모가 아들을 찾아오는 날이 잔칫날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한 아버지는 연길로 아들을 찾아갔다가 친구들을 잔뜩 부른 아들이 음식점에서 1백원짜리 음식상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혀 『네가 이럴수 있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꾸짖었으나 『아버지,다들 그렇게 하는데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었다. 아버지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의절을 선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연변대학은 맥주대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성세대의 눈에는 젊은이들의 과소비와 사치가 큰 골칫거리이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간다는 희망속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1∼2세와 달리 연변에서 태어나고 자란 3∼4세는 쉽게 벌고 쉽게 쓴다.

대학생들은 술을 마시며 「저바다가 맥주라면 육지는 명태안주」라는 노래도 부르고 있다.

홍콩 대만의 비디오테이프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옷차림과 머리모양 행동에서 홍콩배우 주윤발 유덕화를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5년전부터 택시운전을 하는 도문의 김모씨(26)는 비닐공장에 다니는 부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에 『돈은 세상이잖아요』하고 반문했다.

중국 조선족은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럴을 한창 모색해가고 있는 중이다.

□특별취재반

임철순(사회부차장) 강진순(사회부기자) 조상욱(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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