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인 백남준씨는 고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전엑스포에 남다른 열정과 예술가적인 관심을 쏟고 있다. 재생조형관 한복판에서 자신의 비디오아트인 「거북선」을 설치해놓았고 테마파크 등 대회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비디오아트란 예술적 신천지를 개척,발전시켜온 그는 대전엑스포장의 미적 관심을 현대전자문명과 예술적 가치의 접목이란 관점에서 풀어나갔다. 백남준씨가 개막을 앞두고 엑스포장을 거닐며 느낀 「비빔밥의 정신과 대전엑스포93」 특별기고문을 전재한다.<편집자주> 대전엑스포 현장을 거닐면서 절로 생각나는 것은 우리의 비빔밥 문화이다. 즉 정보량이 폭주하는 현대전자문명에서의 명쾌한 해답이 혼합매체(Mix Media)정신이다. 편집자주>
또 일본 쓰쿠바엑스포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예산을 가지고 4배의 대회장을 벌여놓은 것은 경제적 성과에 앞서 미학적 성과이기도 하다.
회장을 돌아보며 각기의 건물 하나하나마다 개성을 보는 동시에 건물과 건물과의 관계에서 인간두뇌의 상호연관(Cybernetic Interrelation)을 자연히 보게 된다. 이는 레이더발명가이자 초기컴퓨터 발명가인 노르베르트 와이너가 48년 제창한 「인간과 기계간의 대화와 통제」라는 주제와 맥을 같이한다. 즉 미래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골목길이라는 것이다.
대전엑스포의 정수는 이같은 개별건축물의 미학뿐 아니라 건물과 건물과의 관계가 골목길을 거닐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것을 생생히 체험하는데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와이너의 정신을 「학제학」이라는 신조어로 번역했다. 한학문과 타학문 사이의 골목길을 고찰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초대형 IC집적회로를 확대시켜 놓은 것 같은 대전엑스포장의 디자인 정신은 비빔밥으로 비유되는 한국고유의 습성에 전자적 미래를 접목시켜놓은 듯하다.
엑스포의 총계획자(오명 조직위원장)가 단순한 건축·도시공학전문가가 아닌 전자회로의 명수라는 점을 직감케해주는 면모다.
각 소재의 특징을 살려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일본 음식문화에 비해 우리 요리상은 모든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 반대의 방식이다. 먹는 사람의 기호 입맛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마치 금세기말의 컴퓨터 전문화를 예견한 무작위접근(Random Access) 방식이다.
미래의 전자회로시대·글로벌한 국제화시대에 적응하기 알맞은 수법과 철학이 담겨져있는 우리 음식법의 개성적 존재가치에 대해 저절로 찬양이 나온다.
텁텁한 서민상에 이르면 가운데 놓인 된장찌개 김치에는 서로의 숯가락이 몇이건 상관할바 없이 텀벙텀벙 드나든다.
바로 다가오는 21세기 혼합매체 공생문화의 표본이다. 이러한 한민족의 꿈이 대전엑스포장내 포스터모던한 건물간의 집적회로 사이에서 언뜻언뜻 보인다.
엑스포장 이거리 저거리를 유보하면서 원·근·중근방의 삼거리속에 부단히 변화하는 건물의 무리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준다. 원근법(Perspective)이란 르네상스 미학을 다시금 되새길 정도다.
대전엑스포는 또 미래뿐만 아니라 「미래의 미래」에 대한 투자도 해놓아 자랑스럽다. 「진 틴글레이」 「보브란스첸브리」(주=테마파크 참여예술가) 등과 같은 전위적 신예예술가들의 작품이 대중적 박람회장에 어울릴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지만 1백년후 엑스포를 회고하라면 이들 소수 엘리트에 의한 특수예술이 오히려 부각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번 대전엑스포는 과감히 세계의 미래지향적 젊은 예술가를 한자리(주=테마파크,재생조형관)에 모아놓았다.
이런 미래지행적 투자는 엑스포사상 선보인 예가 없다. 오사카 엑스포 당시 미 펩시콜라가 나서 E·A·T(예술과 기술의 실험)전을 시도한바 있으나 대중적 지지가 없자 즉시 로큰롤 쇼로 바꿔버린 예밖에 없다.
이러한 판에 대전엑스포가 영구시설에 정식 투자해 역사에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문화엘리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우리의 정신풍조가 선진화됐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매우 흐뭇하다.
더구나 테마파크의 큐레이터로 금세기 최고인 「퐁튀스 홀텐」과 「아킬르 올리바」 두사람을 초대한 사실은 예술가인 나로서도 행운이다.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과감히 대전엑스포를 개최하는 한국인다운 큰 가슴을 나는 진정 사랑한다.<비디오 아티스트>비디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