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지난달 30일 하오 늦게 예정에 없던 최고위원 회의를 열었다. 지난달 27일 여야 사무부총장 등이 중앙선관위에 모여 합의한 보궐선거의 중앙당개입 자제방안을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사무부총장들의 합의서가 잉크도 채마르기 전에 휴지조각이 됐음을 물론이다.선관위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때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했던 의구심은 합의의 이행 여부를 지켜볼 필요도 없이 저절로 확인됐다.
지난 6·11 보선때도 여야는 과열방지를 다짐했었다. 물론 지켜지지 않았다. 오는 12일 보선에 대해서도 민자·민주 양당사무총장은 일찍이 회담을 갖고 중앙당개입 자제를 천명했다. 역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선거날짜하나 제대로 합의를 하지 못하는 마당에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 조차 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때문에 여야의 사무부총장들이 모처럼 이뤄낸 합의는 내용과는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는지 모른다.
민주당의 거부이유는 간단하다. 재력과 조직이 막강한 여당을 상대하려면 거당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 과열선거를 실질적으로 부추긴 쪽은 항상 여당이었다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민주당의 이같은 주장에 일리가 없는것은 아니다. 형편이 넉넉한 여당은 형식논리에 강할 수 밖에 없고 사정이 여의치 못한 야당은 이를 파격으로 극복해야만 하는게 정치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무부총장이라는 공식대표가 합의해온 것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정치신의의 실종」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했고 일단 약속을 했으면 다소의 손해가 따르더라도 이를 지키는게 상식일 것이다.
민자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합의번복에 따른 야당의 도덕적 상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과열하지 말자는 여야의 합의가 오히려 과열을 부채질 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가 과열되고,그래서 부정시비라도 끼여든다면 야당이 주장해온대로 「혹서선거」는 국민들을 더위 이상으로 짜증스럽게 만들 것이다.
모처럼만의 산뜻한 여야합의가 결국 고질적인 공방의 소재로 쓰인다는 사실이 관전자를 씁쓸하게 한다. 약속과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도 정치개혁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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