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이 샹젤리제에 돌아왔다. 44년 8월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해방될 때까지 1천5백15일간 매일 정오 샹젤리제거리를 행진하면서 점령군의 위세를 과시했던 독일군이다. 그 독일군이 정확히 50년만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파리의 심장부를 행군했다. 개선문에서 콩코르드광장에 이르기까지 연도를 가득 메운 파리시민과 관광객들 앞에서 독일 장갑차의 둔탁한 굉음이 십수년만의 기록이라는 파리의 폭염을 쫓기나하듯 땅을 진동시켰다.
돌아온 2백명의 독일군은 물론 나치군이 아니다. 5개국 연합의 유럽군단의 일원으로 그들은 14일 프랑스의 최대 축제일인 혁명 2백5주년 기념일에 미테랑프랑스대통령의 공식초청을 받은 것이다.
생중계하는 TV 앵커는 연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반복했다. 콩코르드광장에 마련된 연단에서 미테랑대통령은 엄숙하게 과거의 적군으로부터 거수경례를 받았다. 나란히 앉은 콜독일총리의 표정은 만족스러웠다. 유럽연합(EU)의 공식국가(국가)인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샹젤리제에 울려퍼졌다.
독일군의 파리행진은 EU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군사적으로도 긴밀한 통합을 추구한다는 바람을 상징한다. 그러나 독일군의 파리행진을 보는 파리시민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분노와 용서, 갈등과 화해가 교차했다.
이날 샹젤리제거리에 큰 소요는 없었다. 프랑스국민의 3분의 2가 여론조사결과 독일군의 초청에 반대하지 않았듯이 돌아온 점령군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 시민은 나치포로수용소의 옷을 입은 채 거리에 나왔다.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눈에 뛰었다. 전쟁중에 두 다리를 잃은 작은 마을의 시장은 항의의 표시로 이날 현직을 사임했다.
카페에 앉아 있던 한 시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어제의 적을 계속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친구로 삼는게 낫다. 그러나 프랑스국민은 결코 과거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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