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국새·외무대신 관인 찬탈 날인”/국새찬탈 시점규명 중요사료/모스크바대 박종효 교수입수 5일개관 이준열사기념관 기증고종이 을사조약 체결직후 『일제가 군·경을 동원, 국새와 외무대신관인을 훔쳐내 강제서명했다』는 내용의 친서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2세에게 전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관련기사 13면>관련기사>
이 친서는 고종이 을사늑약(늑약:강제로 체결된 조약) 체결 당시의 강압적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어 국새찬탈 시점을 정확히 고증하는 귀중한 사료로 사학자들에 의해 평가됐다.
이 친서는 근대사연구가 박종효(모스크바대)교수가 제정러시아 대외문서보관소에서 발굴, 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관되는 이준 열사기념관에 기증한 1백여점의 헤이그밀사사건에 관한 사료 가운데 포함돼 있다.
당시 러시아주재 서장관(1등서기관)이었던 이위종 선생이 프랑스어 로 번역한 이 친서에는 「YI HYENG(이형)」이라는 고종황제의 영문 서명이 새겨져 있다.
박교수는 『이 사료 작성일자는 함께 발굴된 다른 사료들을 볼 때 을사늑약(1905년 11월17일)직후로 추정된다』며 『당시 고종의 시종무관이던 현상건이 직접 니콜라이 2세를 알현하고 전달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고종은 이 친서에서 『이토가 군·경을 대동하고 밤에 궁중에 난입, 무력으로 국새와 외무대신의 관인을 훔쳐 미리 준비한 조약문에 날인한 뒤 짐의 서명을 요구했으나 거부했다』며 『미국과 유럽에 알려 방관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니콜라이2세에게 요청했다.(문서명 오삐시 493, 델로 171, 리스트 260등)
고종은 을사조약체결 이듬해인 1906년 미국 프랑스등지 국가원수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친서를 보냈으나 1907년 강제퇴위되는 바람에 모두 전달되지 못했다.
서울대 이태진(국사학과)교수는 『이 친서는 을사조약 체결당시의 상황과 국새를 찬탈당한 시점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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