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인기 없지만 개혁피해 계층 몰표 기대/뛰어난 현실감각… 대통령후보 비약 호기로러시아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51)당수는 17일 총선을 앞두고 의외로 조용하다. 나쉬돔 로시야(우리 집 러시아)의 당수 체르노미르딘 총리나 자유진영의 야블로코 블록 당수 야블린스키가 몸이 둘이어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선거 지원 일정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그는 간단한 기자회견을 갖는데 그쳤다. 주요 정당들이 결전을 이틀 앞둔 15일 TV를 통해 매 시간 요란한 선거 광고 방송을 내보냈으나 공산당은 거의 침묵했다.
주가노프와 공산당의 이러한 차분함은 나름대로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시장경제의 최대피해자인 2,500만명의 연금생활자를 비롯, 공산체제 해체후 실업과 인플레, 사회복지제도의 붕괴로 고통받는 계층이 공산당의 지지계층이라고 보는 주가노프는 TV광고나 언론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노프와 공산당의 이러한 미온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이번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이 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개혁진영의 표밭인 젊은 세대가 정치적 무관심으로 다수 기권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개혁 피해계층은 대부분 투표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불과 5년전 공산당이 무너질 무렵 주가노프는 전국적인 정치 지도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제2선의 당 이론가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오리올시에 있는 교원 양성 대학을 졸업한 주가노프는 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반발해 주류 연방 소비에트당에서 이탈한 러시아 공산당의 정치국원이 되면서 중앙정계로 진출했다. 주가노프는 정치적 혼란기였던 93년 자신이 이끌던 소규모 조직을 러시아 연방공산당의 이름으로 재빨리 등록했으나 다른 공산당 조직들은 그를 지도자로 간주하려하지 않았다. 러시아 의회에조차 진출하지 못하고 있던 주가노프를 결과적으로 부각시킨 사람은 어이없게도 옐친대통령이었다.
옐친은 93년10월 의회를 거점으로한 보수파 진영을 탱크로 진압했으며 당시 의회내 주류 보수진영과 거리를 두고있던 주가노프는 공산 세력으로는 유일하게 총선참여를 허용받았던 것이다. 그는 같은 해 12월 과격 공산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선에 참여, 12%의 지지를 얻어내 공산당 재건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처럼 주가노프의 성공은 뛰어난 현실감각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없어 개인적 인기가 별로 없는 주가노프에게 이번 총선 승리는 그를 대통령후보로 부상시킬 제2의 비약 기회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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