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미학」 창조 35년간의 열정/수많은 사연과 진솔한 필치 고백요즘 도무지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사들은 야단이다. 출판사만이 아니라 예술 문화계가 온통 불황이라고 관계자들이 울상을 하고 있다. 연말대목이 시원치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짓는 마당에 책 한 권 사서 읽는 여유도 있고 연극 한 편쯤 보면서 마음 속에 새겨 넣을 소중한 이야기나 추억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아이들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가정일에 시달리고 송년모임을 분주하게 쫓아다니면서 피곤한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지켜 나가면서 문화인의 긍지를 느끼려면 지금 서점에 달려가 마음에 드는 시집이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한두 권은 사야 하지 않을까. 혹 집안식구들이나 이웃에게 선물을 하려면 금년에는 반드시 책 한 권을 사서 사랑과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떨는지 권하고 싶다.
「머리에도 표정이 있다」(김영사간)의 저자 이은정씨는 35년간 남의 머리를 만지면서 아름다움을 창조해 온 헤어 디자이너이다. 헤어 디자이너,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몸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머리카락은 몸의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면서 그대로 주인의 인상을 규정짓는다.
저자는 삭발을 하는 스님들의 「삭발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누구나 머리카락의 멋과 소중함과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그동안 때로 주인의 기분전환을 위해 사정없이 싹둑 잘려 나가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별의별 색깔로 염색이 되기도 하지만 주인의 생명이 있는한 줄기차게 다시 제 모습을 디밀어 낸다. 어디 그뿐인가.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하거나 귀밑머리나 앞머리가 제법 세기 시작하면 누구나 쫓기는 마음을 가누기가 힘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머리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마치 인공호수 속에 노니는 금붕어의 빛깔처럼 곱게 우리에게 전해 주면서 그대로 우리마음 속을 흔들어 준다. 클린턴으로부터 서태지에 이르기까지, 멋쟁이 여의사로부터 김동길의원의 머리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쪽머리로부터 그레이스 리의 단발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결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주 빛깔 나는 멋으로 머리카락이 주는 표정과, 생명력과, 변신의 아름다움을 서술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머리카락에도 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곧 인격이며 매력일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저자가 자신의 미용실을 「헤어 클리닉」이라고 부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모처럼 깨끗하고 멋진 에세이를 읽은 후 필자는 저자의 사진을 다시 한번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의 전문가다운 안목에 머리를 끄덕였다.<성공회대 총장>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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