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우리는 최소비용에 최대면적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최단시일에 지어지는 건물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건축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사실 이러한 건축관은 모더니즘 초기에 장식을 죄악에 비유한 아방가르드 논쟁에서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특히 우리처럼 건축이 「조국근대화」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나라에서는 건축물에 들어가는 장식이 사치를 넘어서 그야말로 「죄악시」 되어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건축문화가 일정한 예술적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장식의 적절한 사용이 필수적이다.
장식은 인간이 자신을 남과 구별하고 싶어하는 제2의 본능행위중 하나이다. 벽지를 고를 때 이것저것 따져보는 심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건물의 장식은 사람의 피부를 둘러싼 의복을 입는 행위에 자주 비유된다. 노출과 가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의복문화가 형성되듯이, 건축에서도 장식이라는 겉옷을 이용한 멋내기는 필수적 요소로서 건축가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또한 장식은 거리를 오가는 대중들에 대한 시각적 서비스라는 사회적 기능도 지닌다. 건물은 미술품과 달리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건축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바이지만, 이러한 행운에는 대중들의 감성에 맞는 장식적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할 책임도 따른다.
이것만이 아니다. 건물에 쓰이는 장식은 한 사회의 정신적 건강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장식은 한 사회가 일정수준에 이르러 경제적 잉여가치가 얻어질 때 본격적 수요가 형성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잉여가치를 문화예술분야로 투자하겠다는 건전한 동의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만 장식은 꽃필 수 있다. 고소득시대에 접어들었으면서도 잉여가치를 밤의 문화에 탕진해버리는 사회분위기는 우리의 빈한한 건축문화현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현상인 것 같다. 개발독재시대 경제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추구하던 우리의 건축문화가 90년대에 들어서는 엘리트들의 미니멀리즘(박스건축)이 전성시대를 맞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래 우리 민족은 건물 구석구석에 자잘하고 소박한 장식을 즐겨쓰던 다정한 민족이었다. 장식의 추방이 삭막해져만 가는 세상 인심과 겹쳐 일어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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