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침투 사건을 두고 한미양국간에 의견이 맞춰지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한반도외교 틀(frame)이 달라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통해 유감을 표시해 오면 남한은 이것으로 만족하고 4자회담과 같은 더 큰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한국은 남한에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 있는데 이는 미국이 모든 한반도문제를 3자협상원칙으로 풀어가려 하는 오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유감을 표시하든 사과를 하든 미국에 함으로써 한국을 뛰어넘는 미북양자관계의 틀을 정립하려 하고 있다.한반도문제 협상의 기본 틀은 기본적으로 남북한 2자체제이다. 남북한은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갖고 대화를 트기 시작한 이후 비록 강약의 정도는 있었지만 다양한 통로와 다양한 위상의 남북접촉을 해오다가 1992년 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한반도문제는 남북한 2자가 합의해 해결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우게 됐던 것이다. 미국도 이에 따라 한반도문제는 한국이 주도하는 2자회담원칙을 지지했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에 들어와 북한핵문제가 나오면서 남북문제의 당사자 원칙을 넘어 미―남북한관계라는 3자관계의 틀로 문제를 풀어가려 했다.
이 3자관계개념은 미국입장에서 보면 북한핵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94년 10월에 체결된 미북한 제네바합의 이후 클린턴행정부는 3자회담방식을 핵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문제 전반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북한은 북한대로 제네바합의 이후에는 미국의 3자방식까지도 건너뛰어 한반도문제의 미북직접해결식으로 치달으려 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원산항의 북한간첩침투요원들이 강릉해안에 들어온 것을 갖고 미국에 유감을 표할 이유가 없는데도 북한은 한반도문제는 이제 남북한간의 2자문제가 아니라 미북한간 문제이므로 사과를 하든 유감을 표하든 미국에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92년 남북한이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설립된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린 것도 바로 한반도문제의 미북 2자회담방식이라는 외교틀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한 2자해결원칙이 미국의 3자회담원칙, 또는 북한의 미북 양자협상전략으로까지 일탈하려 하고 있는 것은 현 정부가 맞고 있는 대북외교의 위기이다.
이런 위기를 몰고 온 데는 현정부의 초기외교팀들인 한승주(전 외무장관), 한완상씨(전 통일원장관) 등이 일조를 했다. 그러나 이런 3자방식 또는 미북양자방식이 한반도문제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의 협력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잠수함침투사건을 두고 남북한이 모두 자제해야 한다는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사건의 본질마저 이해하지 못한 발언으로 무시된 것과 같은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문제의 3자해결 구상을 갖고 있다 해도 이는 북한핵문제 해결에 국한시켜야 한다. 클린턴행정부가 잠수함 침투사건 같은 명백한 북한 침투행위를 두고 3자해결방식을 적용하려 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사도로 자처하는 미국이상을 저버리는 일일뿐 아니라 오랜 우방인 한국을 실망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미양국은 이번 잠수함사건을 기점으로 한반도문제의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공조해야 한다.<정일화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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