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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물’의 경우/정옥자 서울대 교수·한국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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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물’의 경우/정옥자 서울대 교수·한국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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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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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고있는 역사바람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현재도 방송되고 있는 「용의 눈물」(KBS 1TV)은 대선구도와 맞물려 여전히 시청률 상위권에 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임꺽정」(SBS TV)도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후 임꺽정이라는 개성있는 캐릭터가 아직도 광고에 나타나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역사의 라이벌」로 시작된 역사다큐물은 「역사추리극」을 거쳐 「조선왕조실록」으로 제목을 바꿔 계속되면서 시청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출판계 역시 몇년 사이에 우리나라 역사물이 세몰이하고 있다. 역사물의 거의 대부분이 조선시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이러한 현상은 박제화하고 있는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어 우리의 삶에 역사를 가깝게 끌어들이고 이야기를 잃어버린 역사를 재생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어느때보다도 우리 선조들의 삶이 피부에 와닿고 그 삶의 질이 우리의 삶과 비교되어 현재의 우리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성찰의 시간도 갖게 한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되살리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물에서 사실고증은 필수이다. 역사물 제작팀은 영상으로 사실성을 실증해야 하기 때문에 고증을 위해 노력하고 볼거리를 찾아내려 애쓴다.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가 아무리 픽션의 여지가 있다해도 그것이 역사물인 이상 사실고증은 그 시대상을 정확히 그려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이 제거되는 장면에 수많은 군사가 동원되었는데 사실은 그때 정도전이 지금은 한국일보사 부근인 송현에서 한가롭게 술잔을 나누고 있다가 방원의 자객들에 의해 습격당했다. 이러한 사실적 오류는 기록이나 논문을 꼼꼼히 챙기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어찌보면 사소한 것이고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된 역사해석이나 지나치게 현재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하는 행위이다. 다시 「용의 눈물」을 예로 들자. 왕위를 놓고 벌이는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힘겨루기를 오늘날 대권주자들이 벌이는 정치판의 작태와 비교하면서 「권력을 향한 투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든가 「정치판의 권모술수 역시 똑 같다」고 하는 비평은 그 시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현상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정치행태를 정당화하는 구실까지 하고 있다. 이는 건국초기 왕권이 안정되지 못하고 사상적 통일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질적인 이념간의 갈등 표출이라는 점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 후 조선의 방향성은 이러한 초기의 무질서와 비합리성에서 탈피하여 무력의 논리보다는 말로 설득하는 명분사회를 이루어 나갔다.

결국은 역사의식의 문제이다. 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던가? 역사는 끊임없이 다시 쓰여진다고 하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거기에 비춰보고 보다 나은 미래를 전망하여 설계하기 위해서다. 근대 이후 서구와 일제가 합동으로 자행한 제국주의적 식민사관이 아직도 우리 역사학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제일주의라는 또다른 역사관이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가리우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잘못 해석하면 오히려 해독을 끼친다는 말도 있다. 역사의식의 혼란은 진정한 시대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대중화작업은 사실고증과 역사의식의 제고라는 두개의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루면서 수준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역사물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교양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제의식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본적으로 짚어보아야할 문제부터 진지하게 접근해 볼 일이다. 우리의 기나긴 역사는 우리가 뿌리깊은 민족임을 증명하고 있다. 뿌리가 깊어서 우리 민족이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서구의 민족이기주의인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찬란한 민족문화를 이루어 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고 그러한 우수성에 착목하는 장강대해 같은 큰 스케일의 역사물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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