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향집을 화재로 잃었던 한 소년이 1,000만 서울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방재본부장 자리에 올랐다.김광수(金洸洙·52) 서울시소방방재본부장은 지난 8일 본부장 임명장을 받으면서 40년전 고향집 불을 끄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경북 상주의 고향집에서 밤늦게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김본부장은 지붕에 불이 난 것을 맨 처음 발견, 식구들을 깨웠다. 김본부장은 곧바로 이웃에 구조를 요청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9명의 가족을 대피시켜 가족들의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방차는 집이 잿더미로 변한 뒤에야 도착, 마을사람이 항의하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후 소방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던 그는 1975년 제1기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소방에 투신한 뒤 강남소방서장, 내무부 방호·구조과장, 중앙소방학교장 등을 거쳤다.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평가는 ‘119 응급구조 체계를 확립한 주인공’이라는 것. 1994년 내무부 방호과장 시절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응급구조구급체계의 문제점을 절감한 그는 그때까지 119와 129로 나뉘었던 응급신고체계를 119로 통합했다. 95년 전국 115개 소방서에 119구조대를 설치한 것도 그의 작품. 당시까지 119에 대한 인식은 화재진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이후 119의 활동범위는 응급구조 및 안전사고 전반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노력은 95년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빛을 발했다. 당시 내무부 구조구급과장이던 그는 전국 119구조대원의 50%를 동원, 삼풍백화점의 구조구급활동을 총지휘해 소중한 생명을 속속 구출해냈다.
김본부장은 “앞으로는 대형 재난사고의 예방뿐 아니라 자체 ‘부조리 사고’의 방지에도 힘써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소방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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