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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전상국-문정희 교수 - 故서정주·황순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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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전상국-문정희 교수 - 故서정주·황순원을 말한다

입력
2000.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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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첫해, 우리 문단에서는 두 거인이 스러졌다. 황순원과 서정주. 1915년 같은 해에 태어나 올해 나란히 타계한 이들은 '소설하면 황순원, 시에는 서정주'라 불릴 만큼 한국문학의 거목이었다.황순원으로부터 소설수업을 받은 작가 전상국과 서정주로부터 시를 배운 문정희 시인이 만나 스승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했다.

- 돌아가시던 날, 느낌이 특별하시겠어요.

▦문정희 = 24일 밤 저는 오후 9시30분까지 곁에 있다가 "오늘 밤은 괜찮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1시간 30분 정도 있다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어요.

순간 아찔했습니다. 시신을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아 미당이 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을 읽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눈도 참 많이 내렸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선생님의 시를 읽은 뒤 영안실로 찾아 갔습니다.

▦전상국 = 저는 올 9월 황순원 선생님을 떠나 보냈습니다. 춘천 집에 있는데 기자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순간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지요.

- 두 분은 어떻게 해서 황순원, 서정주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습니까.

▦전상국 = 고 3때 제6회 학원문학상 대회에서 입상한 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때 이미 '인간접목' 등 황순원 선생님의 단편 몇 편을 읽었는데 그 영향으로 선생님이 계시던 경희대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그게 1960년입니다.

▦문정희 = 65년 진명여고 3학년때 동국대 백일장에서 '플래카드'라는 시로 장원에 뽑혔습니다.

동국대에 계시던 미당이 제 지도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며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 한 말씀에 저는 동국대 입학을 결심했습니다.

그 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집을 냈는데 미당이 서문도 써주고 '첫 숨결'이라는 뜻에서 '꽃숨'이라는 제목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뒤 제 주례도 서주었고 아들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전상국 = 대학 2학년때 원고지 70매 정도 되는 소설을 하나 써 황순원 선생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두 달 정도 후 "잘 썼더구먼"하시며 원고를 돌려 주셨습니다.

원고를 보니 틀린 문장과 틀린 낱말, 어색한 표현을 연필로 일일이 고쳐 놓으셨지요. 나는 어휘력도, 문장력도 떨어지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 작품은 다음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동행'의 초고였습니다.

스승께 글을 자주 보여주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일이 있은 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문정희 = 미당은 제가 쓴 시를 보시면 "상당해졌어" "더 솔직해야겠더라"등의 말로 평을 해주셨지요. 어느 부분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구체적 지적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의미를 알 것도 같습니다.

- 가까이서 본 두 분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전상국 = 흔히 문학 하다 보면 작품과 작가가 불일치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황선생님은 작품과 작가가 완벽하게,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치한 분이었습니다.

▦문정희 = 미당은 제가 꿈꾸던 그런 시인이었죠. 어떤 사람도, 어떤 사물도 그는 시로 표현했으니까요. 한번은 조선 백자를 만지시더니 "우리의 살결과 숨결 같다"고 표현했어요. 또 한번은 바이칼호에서 사 온 옥칼을 귀에 대더니 "바이칼호의 억만년 세월이 들려온다"고 표현했어요. 말 한마디가 그대로 시어가 됐습니다.

▦전상국 = 황순원 선생님은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에서 우리말을 완벽하게 구사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어색하고 번역투에서 나온 서구식 3인칭 표현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사람 이름을 구체적으로 썼고 '그녀'라는 말 대신 '그네'라고 표현했죠. 독자를 중히 여기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책을 낼 때면 초교와 재교를 늘 손수 보셨습니다.

▦문정희 = 미당은 책을 건성으로 읽지 말고 치밀하게 읽으라고 했어요.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나 각국의 신화, 삼국유사 등을 읽으라고 하고 그 책이 담고있는 정신을 잘 파악하라고 했지요.

- 스승 두 분은 생전에 교류가 잦았습니까.

▦문정희= 그럼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에서 함께 사시면서 자주 만났어요. 걸어서 5분 거리거든요. 미당은 황순원 선생님의 아드님인 황동규 시인의 문단 추천을 해주셨고, 미당의 따님인 승해씨를 문단에 추천하고 결혼 주례를 한 분은 황순원 선생님이지요.

▦전상국= 황순원 선생의 칠순잔치 때 미당이 황선생님을 위해 쓴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학두루미나 두어 마리 / 가끔 내려와 앉아서 쉬는 / 산골길의 낙락장송 같은 그대'라고 칭송하셨죠. 미당은 그만큼 황순원 선생님의 선비적인 이미지를 좋아하셨습니다.

▦문정희= 9월 황순원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미당께 소회를 여쭸더니 "서럽다",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 황순원 선생님은 제자들과 정기적으로 '보신탕모임'을 가지셨지요.

▦전상국= 몇 달에 한번씩 제자들과 함께 보신탕을 먹는 자리를 가졌었는데요, 저를 포함해서 김용성 조해일 정호승 고원정 박덕규 하응백 등이 주로 참여했죠.

보신탕 모임은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인 올 여름까지 계속됐습니다. 여제자들이 기겁을 하고 먹지 않으려 하면 "이걸 먹지 않고 어떻게 문학을 한단 말인가"라며 농도 치시곤 했죠.

▦문정희= 저도 황순원 선생님으로부터 술을 얻어 먹었는데요,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당은 보신탕 모임 정도는 아니지만 조정래 김초혜 박재천 같은 동국대 출신과 서라벌예대(중앙대)에서 강의하던 시절의 제자인 유현종 이근배 천승세 같은 문인들과 어울렸습니다.

▦전상국= 미당을 뵌 적은 없습니다만 시를 보면 미당은 비오는 날 하얀 바지를 입고 물웅덩이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천진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 같아요. (웃음)

▦문정희= 미당의 시 정신이 바로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모든 사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 미당과 황순원 선생의 문학적 세례를 받은 제자로서 앞으로 두분 선생님의 문학적 성과를 어떻게 이어나가실 생각입니까.

▦전상국= 흔히 '문학의 종언' 운운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자기 문학에 정진하다 보면 이 시대에도 작가의 영역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초반 세상이 어지러울 때 선생과 둘이서 술 한잔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께서 "나는 소설도 예술이라는 것을 끝까지 보여주는 마지막 작가가 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소설이 예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데, 새삼 '소설도 예술'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의아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상업주의와 문학의 효용성에만 치우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문정희= 개인적으로 미당이 닦은 시의 터전 위에 제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스승을 모신 제자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미당과 황순원선생의 작품은 모두가 주옥같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전상국= 황순원선생은 시 104편과 단편소설 104편, 장편소설 7편을 남겼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단편 때문에 단편 작가로 알고 있는데 황순원 문학의 정수는 바로 장편 7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일월' '신들의 주사위' '움직이는 성'을 추천하고 싶네요. 독자들은 작가의 '부단한 형식 실험'과 '인간의 존엄성'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문정희= 어찌 감히 선생의 작품 중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겠습니까. 15권의 시집에 1,000여편의 시를 남겼는데 모두가 절창(絶唱)입니다. 선생께서 제일 아낀 당신의 시집은 제5시집인 '동천(冬天)'입니다. 그래서 겨울 하늘로 떠나셨는지도 모르죠.

아, 미당이 남긴 미발표작이 하나 있습니다. 2년전 동국대에서 개교 90주년을 맞아 시 한 편 부탁드렸는데, 그 때 선생이 "쓰려면 100주년 기념시를 써야지" 하며 쓴 시가 있는데 지금 동국대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 시가 공개될 날이 기다려집니다.

"보여드린 소설 일일이 교정 부끄러워 한동한 글 안써

작품과 완벽하게 일치한분 "소설도 예술" 뜻이어진 정진

■전상국

1940년 강원 홍천에서 태어났다. 60년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왔으며 소설가이자 강원대 국문학과 교수로 활동중이다. 단편집으로 '아베의 가족' '지빠귀 둥지속의 뻐꾸기'등이 있고 장편으로는 '유정의 사랑'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칭찬에 진로결정 어린아이같은 호기심이

미당 시정신의 출발 내 문학의 터전으로 자리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국문학과를 나와 현재 시인 겸 동국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다. 시집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남자를 위하여'등이 있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등의 소설도 썼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광희기자

kwpark@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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