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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 동의보감에 이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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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 동의보감에 이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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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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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初伏, 올해는 7월 16일)을 며칠 앞둔 서울 성북동의 S식당. 점심시간이 되자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과 초등학생 아이를 데려 온 젊은 부부, 일단의 ‘아줌마’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들어선 초로의 신사 등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이 60여 좌석을 꽉 메운다.이들의 주문은 간단하다. “탕 두 개, 전골 2인분 주세요.” “우리 먹던 배받이 살 수육이 좋겠는데.”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연신 “맛있다”는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벽에 붙은 메뉴판 역시 단순하다. 탕, 수육, 전골, 무침. 앞에 붙은 ‘보신’ 혹은 ‘영양’이라는 글자와 방앗잎 냄새만 없다면 여느 감자탕, 순대국집과 큰 차이가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곳은 ‘개고기’를 판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하게’ 비쳐지고 있는 보신탕집이다.

■보신탕은 어떤 음식

여름철, 특히 삼복(三伏) 기간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리고 몸을 보호하기위해 보양식으로 즐겨 찾던 것이 바로 개고기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

보신탕은 개고기를 이용해 탕을 만든 것이다. 된장과 함께 삶은 고기를깻잎, 미나리, 파 등의 갖가지 야채와 들깨가루, 고추장을 비롯한 양념을 넣어 끓여 낸다.

짭짤하면서도 얼큰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의 조화로 맛을 낸 음식이다. 수육은 고기 그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개고기를 찐 정통식이고, 무침요리에서는 차가운 야채와 고기의 오묘한 이중성을 느낄 수있다.

개고기 요리를 처음 접할 때 큰 부담이나 거부감 없이 맛 볼 수 있는 것은 전골. 감자탕과 비슷한 국물에 고기와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모양새가 그다지 ‘혐오감’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선입견만 버리면 된다. 고기와 야채를 건져 먹고 나면 밥을 비벼주는데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감도는 것이 그 역시 하나의 요리다.

■논쟁 속의 개고기 요리

개고기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예찬을 받는 한편, 극렬한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음식이 문화이고 보편성이 문화의 기본 속성 중 하나라면 이제는 보신탕도 하나의 보편적인 음식문화가 됐다’는 주장과 ‘가축이 아닌 가족 같은, 인간 같은 애완동물을 어떻게 잡아먹느냐’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신탕을 먹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여성들과 가족 단위의 손님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찾아 오고 회식이나 모임 자리로도 애용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신탕이 정책적 판단에 의해 서리를 맞았지만 이제 보신탕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토가 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 ‘코르동 블루’ 아시아 지역 책임자 베르뎅 길로당 조리장은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개고기를 한 번 먹어보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서양의 일방적인 보신탕 혐오증이 동ㆍ서양간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보신탕 전문점인 ‘싸리집’ 임옥자 사장 역시 “최근 CNN에서도 보신탕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취재해 가고 외국인도 간간히 찾는 것을 보면 국제적으로도 개고기에 대한 우호적인분위기가 쌓여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움직임도 여전하다.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세계동물보호협회 등 국제적인 반대운동에 더해 최근에는 개고기반대운동본부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반대세력이 생겨나고 있다.

■보신탕의 효능은?

보신탕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많이 너그러워졌다. 초복을 전후해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예년에비해 늘었다는 것이 보신탕 집들의 설명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개고기의 영양가 때문.

개고기는 사람의 근육과 유사한 아미노산 조직을 가진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정력 증강 등의 보신효과를 낸다는 과학적 증명은 되지않았지만, 영양학적으로 볼 때 소화가 잘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다는 사실은 입증됐다.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고, 많이 먹어도 소화가 빠르다”는 것이 개고기 예찬론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수술 직후 환자 회복식으로도 보신탕이 애용되고 있다.

개고기는 또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달리 찬물로 씻어도 기름이 그대로 씻겨 나가 지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음식이다.

파,부추, 깻잎, 들깨 등의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이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을 이룬다. 동의보감에서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해,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해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적고 있다.

경희대 한의학과 김덕곤 교수는 “사상의학의 체질에 따라각 육고기가 몸을 보양하는 성질이 있는데 개고기 역시 속이 차고 냉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소음인에게 어울리는 보양식”이라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보신탕 집에서 만드는 법

개고기라고 다 똑 같은 것은 아니다. 30근 짜리 황구 한 마리에 서너 근밖에 나오지 않는 부드러운 목살과 배받이살, 갈빗살이최고의 인기 부위. 적당히 기름기가 섞여있고 쫄깃쫄깃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것은 적당한 고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개고기는 도살과정이 음지에서 이뤄져 비위생적이고,중국 등지에서 밀수입된 도사견 등 질이 떨어지는 고기가 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구입처를 찾아야 한다. 개고기는 각 지역 재래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고, 수도권에서는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이개고기 판매로 유명하다. “오래된 가게일수록 고기를 속여 파는 법이 없다.” 한 보신탕집 사장의 설명이다.

서울 시내 유명 보신탕 집은 강원, 전남 등 각 지역에서 직접 보신탕용 개를 키우기 때문에 단골의 경우 이곳 주인에게 부탁해서 고기를 직접 구할수도 있다.

개고기를 구입하면 우선 핏기를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요리법과 큰 차이가 없다.

핏기를 제거한 고기는 냄비에푹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생강 저민 것과 된장을 넣어 3시간 이상 끓인 다음 면 보자기로 짜내야 한다.

식은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찢고 미나리,깻잎, 굵은 파와 함께 양념을 넣어 버무리면 된다. 이 때 칼로 써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찢어야 제 맛이 난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면 면 보에 거른 고기국물을 끓여 버무려 놓았던 고기와 방앗잎 등을 넣은 뒤 간을 맞추고, 그릇에 담아 들깨가루를얹으면 된다.

방앗잎의 냄새가 싫다면 다른 야채를 넣어도 된다. 고기를 찍어 먹을 양념장은 식초와 간장, 겨자에 들깨가루를 알맞은 비율로 넣어입맞에 맞게 만들면 된다. 이렇게 먹는 요리가 보신탕이다.

수육의 경우 고기를 끓여 익힌 다음 찜통 같은 곳에 넣어 야채와 함께 먹으면 되고, 전골의 경우 감자탕 만드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된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하는 노고에도 불구하고, 개고기 요리는 맛과 영양에서 제 값을 해낸다는 것이 개고기 애호가들의 설명이다.

■ 서울시내 이집이 맛있대요

개고기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재료구입부터 조리까지 조금 어려운 요리다. 유명 보신탕집을 찾는 것은 ‘보신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

대체로 단골집을 찾아 가므로 어느 집이 최고냐를 두고 애호가마다 참 말이 많은 게 보신탕집이다.

서울 시내 유명 보신탕집은 지방에서 직접 공수한 황구를 독특한 양념장으로 요리하기 때문에 각각 특징적인 맛을 낸다.

◆싸리집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싸리집’은 단층 한옥 넓은 마당 곳곳에 사랑채 식으로 꾸며져있다.

4대문 안의 공무원과 기업체 직원들도 단체로 찾는 곳이다. 싸리집의 대표 메뉴는 수육. 방앗잎 냄새가 조금은 진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개고기 자체가 너무퍽퍽하면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일부러 쫄깃쫄깃한 살을 고른다”는 것이 싸리집의 설명이다.

외국에도 한국의 대표 보신탕집으로 알려져 있다. 수육 2만 5,000원,전골 2만 5,000원, 탕 1만 5,000원. (02)379-9911

◆약산 흑염소 영양탕 전남 영암군에서 공수되는 황구 배받이살로 유명하다. 1인 당 3만 5,000원씩 내면 양껏 먹을 수 있도록 모든 부위의 수육요리를 내 온다.

육수에 데친 부추가 입맛을 돋우며,찜통식으로 계속 끓고 있는 그릇에 담긴 고기가 적당한 기름기와 야채에 섞여 제 맛을 낸다.

보신탕은 들깨가루가 많이 들어가 텁텁한 편이지만 된장으로 맛을 낸 국물 맛이 일품. 전라도식 밑반찬이 깔끔하고 특히 갓김치와 동치미가 인기다.

음식을 먹고 나면 내오는 육골즙 역시 개운한 뒷맛이 별미. 탕 1만 원. 5호선 마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하나은행 주차장 뒷편에 있다.(02)719-8142

◆쌍다리 영양집 삼선교 입구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20년 전통의 ‘쌍다리 영양집’이 나온다.

허술한 시골풍 식당이지만 맛은 정통 서울식으로 이름 나 있다. 인근 대학 교수들과 공무원들이 즐겨 찾는 곳.

쌍다리 집 역시 대부분의 손님이 수육을 찾는다. 방앗잎 위에 반쯤 삶은 고기를 내오는데 냄새가 전혀 없다.

전골은 미나리, 깻잎등의 야채와 적당히 짭짤한 육수 국물 맛이 일품. 일반 보신탕 집과 달리 고추장을 마구 넣은 국물이 아니라 양념장으로 간을 맞췄다.

종업원이 모두사장 이춘화씨 일가족이라 서비스도 가족적인 분위기. 수육 1만 8,000원, 전골 1만 5,000원, 탕 1만 원. (02)765-4934

이밖에 면목동 토평리 할매 사철영양보신탕, 신촌 철대문집, 청담동 할매가마솥 보신탕, 경기 안양시 청계산 자락의 황구식당도 보신탕으로 유명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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