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관 1동 310호의 문은 열려 있었다. 연구실 가득 쌓인 책묶음에서 오래 묵은 서향(書香)이 풍겨나왔다.그 책의 숲 사이에 김윤식(65) 교수가 앉아 있었다. ‘한 세기에 한 명도 나오기 힘들문학사가(文學史家)’라는 한국 현대문학 비평ㆍ비평사 연구의 우뚝한 산.
40여 년간 쉼없는 현장비평으로 100권이 훨씬 넘는 저서를 낸 열정적독서와 저술, 강의로 살아있는 문학의 화신처럼 여겨졌던 그이다. 김 교수가 11일 오후 2시 서울대 박물관강당에서의 고별강연을 끝으로 정년퇴임한다. 한국문학의 한 장이 접힌다고도 할 수 있다.
고별강연을 일주일 앞두고 만난 그는 “날이 아직 덥다”며 선풍기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보다 손수 끓인 차를 권했다. 그러다가 대뜸 특유의 말투로 “그래, 뭘 물어보러 왔소?” 라고 했다.
_퇴임의 감회는 어떤 것인지요.
“살아서 정년을 맞게 해준 천지신명께 고마운 일이지요.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게놔둔 선후배와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_교수님의 전공은 비평입니다.비평이란 무엇입니까.
“도서관은 묘지와 같은 것입니다. 서고에는 시체 냄새가 가득하고 책장을 넘기면 미이라냄새가 나지요.
산화하는 종이 위에서 죽은 자들의 정신이 희미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렇게 오래 전에 죽어버린 책에 피와 살을 입히고 숨을 불어넣으면책이 살아납니다.
이 행위를 ‘독서’라고 합니다. 비평가는 죽은 책에 몸을 빌려주는 독서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그래서 사르트르는 ‘비평가는 공동묘지의 묘지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냥 독서를 하는 것에 그치면 안되죠. 내 식으로표현해야 ‘작품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방식의 글쓰기, 그러니까 문학 월평(月評)을 쓰는 것으로 작품을 읽어요.이것을 ‘현장비평’ 또는 ‘징후비평’이라고 합니다.”
_왜 소설을 읽고 비평을 하는지요.
“개화기 이후 우리 문학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신념은 ‘인간은모든 생명 중 최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견고한 역사의식과 이데올로기의 성립이 그 신념을 받쳐주었지요.
이런 위기의식을 유지한 까닭에 문학은 사상과 같은 것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 이 신념은 무너지게 됐습니다. ‘인간은최고다’ 대신 ‘인간은 벌레다’라고 인식하게 된 겁니다.”
_그 변화는 어떤 것입니까.
“1992년에 소련이 붕괴했습니다. 역사가 끝난 겁니다. 나는 그때 망연했습니다. 나는 역사주의자요 헤겔주의자입니다.
역사적인 상상력으로 일궈온 소설의 시대도 끝난 것이죠. 나뿐만 아니라 그때 문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은 황망했습니다.
실제로 공부를 중단한 사람들도 많아요. 역사가 끝났는데 더 이상 무엇에 기댈 수 있겠습니까. 이 방황의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그것이 작품속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작품에는 인류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 그러니까 작가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무의식의 흐름’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니까 역사 이후의 코드는 그 시기의 소설이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죠. 역사 이후 소설의 상상력이 옮겨간 것을1994년에 발견했습니다.
그해 나온 윤대녕씨의 단편소설 ‘은어낚시통신’이었지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은어를 상징으로 삼아 존재의 시원을 탐색한소설 말입니다.
‘은어낚시통신’의 출현은 역사적 상상력이 동물적 상상력으로 옮아간 순간이었지요. 90년대를 풍미한것이 이 ‘동물학적 상상력’입니다.”
_90년대도 지나고 이제 세기가바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동물학적 상상력을 투영하는 소설의 시대도 갔지요. 나는 종종‘민들레 씨앗론’을 얘기합니다.
김지하 시인이 감옥 창턱에 앉은 민들레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면서 6년을 버티었다고 하지요. 씨앗이 날아다니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것 말입니다.
나는 문학이 개화(開花)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포자(胞子)로 남아 번식하는 길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동물학적 상상력은 이제 ‘식물학적 상상력’으로 옮겨가는 것이겠지요(김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더 시간이지나면 식물학적 상상력은 ‘DNA의상상력’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 생각에는.”
_그렇다면 새로운 비평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고바야시 히데오는 ‘비평은 교묘하게 작품을 칭찬하는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모양을 갖췄든 비평은 작품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문을 쓸 때 어떤 연구방법을 빌어오든 작가와 작품을 칭찬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됩니다.
아까 내가 집단무의식을 발견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했던가요. 좀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도록 하지요.
나는 내가 사는 현실과 대비하기 위해 소설을 읽습니다. 인간은 현재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지요.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소설은 다릅니다. 작품을 읽으면 인간적인 관점과 신의 관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어요. 독자는 책속에서 신이 되어서 소설가가 만든 세계를 한 손에 쥘 수 있지 않습니까.”
_요즘의 한국 소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순문학과 통속소설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영혼을 울리는 것이 순문학이지요. 하지만 가슴에 착착 달라붙는 감동이 오는 것은 통속입니다.
책을 덮고 난 뒤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모호한 감정, 뭔가 더 알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게 순문학입니다.
백운대 이야기를 할까요. 백운대 오르는 길은 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 곳에 발디디면 되는지발자국까지 나 있어요.
초행길인 사람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지요. 통속소설을 읽는 건 이런 겁니다. 그런데 누가 이 길을 찾아내고 닦았는지 아십니까? 경성제국대학 산악회 학생들입니다.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길을 찾는 노력, 이런 게 순문학의 본질이지요. 나는 때로 90년대 작품 중 상당부분이 통속소설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어요.
물론 그 작품들이 집단에 함몰됐던 개인성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해야겠지만요.”
_비평에 귀의한 구체적 계기를들려주시지요.
“군에서 첫 휴가를 나와 제일 먼저 들른 대학 벽돌담의 붉은 색채가 낯설었습니다. 군대에서 눈쌓인 백색의 세계에서 몇 달 동안 지냈던 탓이지요.
교수 연구실을 찾으니 교수들은 ‘아, 군은 휴가라 들른 것인가’라고 간단하게 얘기할 뿐이었지요. 그때 문득 ‘고립무원’의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감각의 순수한 형태’라 할까요. 그때 내가 지녔던 문학청년으로서의 열정은 소멸했습니다. 복학한 뒤 도서관에 파묻혔어요.
오래된 책은 귀화(鬼火)와도 같았습니다. 이 요괴스러운 불빛에 온몸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큼 편안한 것이 없었지요.
도서관에서 외국의 비평지를 읽으면서 비평이라는 것이 자유로운 정신활동이라는것을 조금씩 알아차렸습니다.
한편으로 문학이 인문과학으로 성립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_퇴임 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나는 글쓰는 것밖에 한 일이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읽고 쓸것입니다. (컴퓨터를 가리키면서) 저걸 써 보려고요.
지금까지는 원고지에 펜으로 썼어요. 이제 컴퓨터를 배우려고 합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김윤식 교수의 저술활동
김윤식교수는 ‘한국어가 문자언어로 정착된 이래 최다작(最多作) 문필가’로 꼽힌다. 1962년 등단한 뒤 그는 오로지 읽고 쓰는 작업에만 몰두해왔다.
첫 저서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1973)를낸 이래 지난 해 8월 공식적인 100권째 저서 ‘초록빛 거짓말, 우리 소설의 정체’를 발간했으며, 이후에도 올해 4월 ‘김윤식의 문학기행’, 8월에는 ‘한ㆍ일 근대문학의 관련양상 신론’을 펴냈다.
여기에다 편저와 번역서를 합하면 그의 저서는 공식 기록인 102권을 넘어선다. 그 자신도 저서의 수를 “정확하게 잘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은 ‘김윤식’의 이름으로 된 책을 120여 권 소장하고 있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는 한국의 문학비평을 비로소학문의 자리에 올려놓은 기념비적 저서이다.
김 교수는 여기서 당시의 시대 분위기상 거론조차 힘들었던 카프(KAPF)문인과 월북 문인들을 실명으로 다루며 해방 이전까지의 문학을 정리했다.
저술기간 10년, 원고지 4,6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전기적 평론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는이광수의 모든 기존 작품은 물론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일본 현지 답사 등 ‘발로뛰는 국문학자’인 그의 실증적 학문을 보여주는 저서이다.
김 교수의 평전 작업은 ‘임화 연구’ ‘염상섭 연구’ ‘이상 연구’로 이어졌다. 고(故) 김현과 공저한 ‘한국문학사’도 국문학도의 필독서이다.
그가 일군 글밭을 지나가지 않고 한국 현대문학을 이야기한다는것이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엄밀한학문적 작업 외에도 그는 문예지ㆍ신문 문학면의 월평은 물론 ‘문학의 해’이던 1996년에 한국일보에 ‘김윤식의 신문학사 탐구’를 연중 연재하는 등 저널을통해 우리 문학의 모습을 알리는 데도 남달리 힘써왔다.
김 교수는 정년에 즈음해 흔히 후학ㆍ제자들이 만드는 기념논문집을 발간하는 것에 손사래를 쳤다. 제자들은 대신 김 교수 저서의 서문만을 모은 ‘김윤식 서문집’을 펴냈다.
단독 저서 88권과 번역서 5권, 편서 2권의 서문을 모은 책이다. 그것조차도 그의 저서를 모두 모은 것은 아니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불을 켜고 살아왔다/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달라고 떼쓰던 그런심정으로, 그런 심정으로/ 글을 써…” 왔다고 김 교수는 이 서문집의 서문에서 고백했다.
■김윤식 교수 연보
▦1936년 경남 진영 출생
▦1959년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1962년 ‘문학사 방법론 서설’과 ‘역사와 비평’이현대문학에 추천돼 등단
▦1965년 서울대 국문학 박사
▦1968년~ 서울대 교수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1973) 한국문학작가상ㆍ대한민국문학상(1987) 김환태 평론문학상(1989) 팔봉비평문학상(1991) 편운문학상(1993) 요산문학상(1994) 수상
▦2001년 예술원 회원, 황조근정훈장 수훈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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