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 돈보다 명예를 물려줘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 돈보다 명예를 물려줘라

입력
2001.10.22 00:00
0 0

국회의원이 변호사를 겸업하면서 수사기관에 보이지 않게 압력을 행사한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억대 수임료를 받고,변호사 선임계도 내지 않은 채 담당검사에게 사건의 선처를 부탁한다. 검찰 간부가 고소인과 어울려 다닌다. 일부는 조직폭력 세력들과 친분까지 있다고 한다. 최근 일련의 '게이트'에는 정치인,검찰 ,기업가,조직폭력의 우두머리가 함께 언론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교육감이 업자에게 억대의 뇌물을 받는다. 교수가 연루된 입시부정도 잊을만하면 터진다. 공직선거 후보들은 정책이나 장점으로 득표하려고 하지 않고 상대후보를 비방하고 헐뜯어 표를 구걸한다. 언론을 통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끄러운 사회지도층의 모습이다.언론에 이름과 사진이 오르내리는 안타까운 인사들만큼이나 국민들도 아침에 신문을 펼치고,저녁에 9시 TV뉴스를 켜기가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최고의 양심과 도덕성을 갖추고 시민사회의 모범이자 행동 준칙이 되어야 할 인사들의 추악한 행태에 일반 시민은 한없이 실망한다.국민들은 이러다간 이 나라의 장래가 어찌 될 것인지 걱정하면서 과연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할 지 낙담하고 있다.

선장을 잃은 배에 탄 승객들처럼 초조하고 답답할 뿐이다.

지금까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공직자 윤리규정이 법제화됐고,정치적 또는 고위직 부정비리를 엄단하기 위해 특별검사제가 운용되고 있다. 공직사회의 비리를 발본하기 위해 내부고발자 및 공익제보자 보호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또 돈 안든느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부패감시자로서의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활동이 효과적인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바라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정부패의 원인은 바로 공직자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지나치게 탐욕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와 후세에 이름과 명예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사회지도층이 재산까지 남기려다 보니 부정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물론 자신만 잘 먹고,잘 살기 위해서 재산을 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와 공동체보다는 나오 나의 가족,각종의 인연을 우선 생각하는 세태 속에서 자식사랑이 지나쳐 한 푼이라도 자식들에게 더 물려주기 위해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사회지도층의 올바르지 못한 행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직자들이 이름과 명예 외에 재산을 물려주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우선 부의 세습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세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으로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를 축적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재물은 그저 자신이 먹고 마시는데 필요한 정도면 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족 중심적이고,인연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가족 간의 끈끈한 인연을 재산으로 엮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를 걱정하는 자식이라면 물려받을 것은 이름과 명예로 족하다고 선언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돈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황금 알기를 돌같이 하라는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돈과 명예는 함께 얻기 어렵다는 사실은 과거로부터,또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평범한 진리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 법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