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확히 2주일 만에 스타가 되게 한 한가지 에피소드가 더 있다.1980년 2월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의 ‘윤수일의 타잔’ 코너에 출연하고 나서 1주일이 지나고 나서다.
그때만 해도 대단히 독특한 분위기의 새 얼굴로 화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코미디언으로서 실력은 인정 받지 못한 때였다.
그날 코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운명하셨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의사 역.
여자 코미디언 최용순의 남편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의사인 내가 진찰을 한 후 그녀에게 “죽었다”고 알려주는 비교적 수월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한마디를 외우기 위해 두툼한 대본을 수십 번 들춰가며 밤늦도록 읽고 또 읽었다.
이튿날 새벽 운현궁 스튜디오. 마침내 녹화가 시작됐다. 누구였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데 환자가 침대에 누워있고 최용순은 내 곁에 섰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최용순이 호들갑을 떨며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라고 울부짖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리 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는 환자 대신 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봤다.
시간은 흐르고 초조감은 더해갔다. 그때였다.
조연출이 하도 답답했는지 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입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조연출을 따라 했다.
손가락으로 내 오른쪽 눈을 까보이며 최용순을 쳐다본 것이다. 방청석에서는 폭소가 터졌고 최용순은 웃음을 참느라고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하여간 이 사건으로 다음날 우리 집 앞에는 동네 꼬마들까지 몰려들어 사인을 해달라고 아우성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눈 떠보니 스타가 된 형국’이었다.
영화사 제작부장들은 현금을 싸 들고 금호동 집을 찾아왔고, MBC와 KBS 코미디 담당자들은 나를 출연시키기 위해 밤마다 집 앞에서 육탄전을 벌였다.
어떤 영화사는 다짜고짜 돈 보따리와 대본을 집에 넣어주고 가기도 했다.
최고급 승용차까지 생겼다. 어느날 최봉호(崔奉鎬)씨가 불쑥 찾아왔다.
벽제 촬영소에서 영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찍던 무렵이다. “야, 밖에 나가 봐.” 그곳에는 왁스 칠이 번쩍번쩍하는, 당시 최고급이었던 로얄 승용차가 있었다.
“네가 못생겼으니까 대신 운전기사라도 훤해야 될 것 같아서 미남 기사도 데려왔다. 스타가 차 하나는 훤해야지.”
촬영이 끝나고 승용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길거리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처음 타 본 고급승용차, 그것도 푹신한 뒷자리에 폼을 잡고 앉아 있으려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쑥스럽고 민망했다.
다음날 새벽. 눈을 떠보니 아내고 아들이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식구들이 모두 나와 차를 닦느라고 난리였다.
인기는 유흥업소에서 더 두드러졌다.
나는 계약금 1억원에 월 출연료 1,000만원을 받고 최씨의 서울구락부에 나가기로 했는데, 출연 첫 날 이주일을 보겠다는 손님이 장사진을 이뤘다.
웨이터들은 예약석 팻말을 세워놓고 뒷돈까지 받았고, 인근 유흥업소 마담들은 나와 놀게 해달라고 최씨에게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에 15군데를 뛰면서 한 무대에서 500만원을 받는 인기와 명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해 8월 갑자기 연예인 숙청작업이 몰아쳤다.
코미디언 배삼룡, 가수 나훈아, 탤런트 허 진 등 16명과 함께 ‘저질’로 낙인 찍혀 하루아침에 방송사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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