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 하루 전인 3월9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통일국민당 공천을 받아 경기 구리에 출마하겠다. 그 동안 보여준 구리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저버릴 수 없었다. 10일 오후5시까지 등록을 마치겠다.”국민당도 나의 출마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주영(鄭周永)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사실을 공개한 뒤 구리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씨에 대해 온갖 압력을 넣고 있지만 우리 당은 이에 꺾이지 않고 이씨를 반드시 국회에 내보내겠다”고도 말했다. 보름 여 동안의 침묵과 부인 작전이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나와 정 대표는 안가에서 등록서류를 수십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라도 등록 당일 서류 미비로 출마를 못하게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나보다도 정 대표가 더 열심이었다. 정 대표는 지난 번 ‘제주 잠행’을 의식한 듯, “이번에 또 없어지면 안 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안가 앞으로 검은색 승용차 20여 대가 도착했다. 조윤형(趙尹衡) 선거대책본부장, 김동길(金東吉) 최고위원, 양순직(楊淳稙) 고문, 정몽준(鄭夢準) 홍보위원장 등 주요 당직자는 거의 다 왔다. 8일 안양에서 열린 첫 정당연설회에서 찬조연설을 한 최불암(崔佛岩)씨도 찾아왔다. 안가 앞은 그야말로 인사인해를 이뤘다.
나는 정 대표와 같은 차 뒷좌석에 탔다. 앞 좌석에는 정몽준 의원이 탔다. 현대 씨름단 선수들도 버스 3대에 나눠 탔다. 지난 번 김포공항에서 ‘힘’에 밀려 SBS로 납치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구리로 출발. 20여 대의 차량은 마치 대통령 행차를 방불케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완벽한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을 지나면서부터 보도차량이 하나 둘 따라붙기 시작했다. 청운동 안가를 벗어난 지 불과 30분 뒤의 일이었다. 2, 3분 후에야 경찰차 10여 대가 따라붙었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마침내 구리시에 들어섰다. 후보등록 장소인 구리시청 앞은 완전 장사진이었다. 구리시가 생긴 이래 그렇게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뒤엉킨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현대 씨름단이 맨 앞에 서고 나와 정 대표는 팔짱을 낀 채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마련된 테이블에 등록서류를 제출한 다음 도장을 찍었다. 근 3개월 동안 진행된 ‘이주일 드라마’가 정점에 달한 순간이었다.
시청 밖에 나가보니 구리시민 수천 명이 몰려와 있었다. 왼쪽 건너편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구리지역 강원도민회가 마련한 사무실 간판이 보였다.
커다란 종이에 ‘정주일 사무소’라고 쓴 허름한 간판이었다. 당시 국민당은 여당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정식 지구당 사무실조차 만들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사무실까지는 한 300㎙ 거리였다. 나와 정 대표 뒤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기자들도 수십 명은 돼 보였다. 사람들은 ‘이주일’ ‘이주일’을 연호했다. 이때까지 내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안 하던 정 대표가 비로소 한 마디 했다. “주일이, 당선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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