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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37)"주일이, 당선될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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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37)"주일이, 당선될 줄 알았어"

입력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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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투ㆍ개표 당일 저녁. 기자들과 당원들은 내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었다.‘이주일이 점적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처음 밝히는 것이지만 그때 나는 박종환(朴鍾煥) 감독과 압구정동 실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감독이 “선거는 이미 끝났다. 이제 TV 앞에서 죽치고 있어봐야 필요 없는 일이다”라며 꼬셨다. 거의 매일 유세장에 들러 나를 응원한 박 감독이었다.

개표가 시작될 때 나는 이미 인사불성이 돼 있었다.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오후 9시가 됐을까. 나는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누워버렸다.

언뜻 TV를 보니 초반 부재자 투표에서 민자당 전용원(田瑢源)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 후보에게 90표 가량 뒤지자 아내는 졸도까지 했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와 있던 조윤형(趙尹衡) 선거대책본부장의 울음소리였다.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고생했는데 실패했구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어나 아내에게 갔다. 여전히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여보, 괜찮아. 우린 살 수 있어.”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껴안더니 “의원님!”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참모들도 내게 달려들었다. “정 의원님, 축하합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나를 헹가래쳤다. 그때까지도 나는 술이 덜 깬 상태였다.

참모들에게 그동안 진행상황을 자세히 들었다.

3번째 개표 순서인 구리시 갈매동 제2투표함을 열었을 때부터 내가 1위로 올라섰고, 그 후 박빙의 리드를 지키다가 밤 11시30분께 완전히 승세를 굳혔다는 설명이었다.

내가 2만5,751표, 전 후보가 1만8,142표, 민주당 조정무(曺正茂) 후보가 1만2,900표. 일개 코미디언이 현역 의원인 전 후보를 무려 7,609표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다음날 새벽 3시께 지구당 사무실로 갔다. 이미 술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운동원 수백 명 모두가 울고 있었다.

정주영(鄭周永) 대표가 마침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정 대표는 그 흔한 “수고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오로지 “주일이, 내가 뭐라고 그랬어? 당선될 거라고 그랬지?”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국민당 동료들의 승전보도 속속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갑구에 출마한 김동길(金東吉) 후보는 일방적 승리를 거뒀고, 울산 동구에 출마한 정몽준(鄭夢準) 후보도 무난히 당선됐다.

다만 홍콩까지 나를 찾아왔던 봉두완(奉斗玩ㆍ용산) 후보가 진 것은 의외였다.

이때 부산 동구에 출마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민자당 허삼수(許三守) 후보에게 패배한 사실을 떠올리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기자들도 몰려들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떠올랐다.

“처음 후보등록을 하러 구리시청에 왔을 때 시청이 아니라 면사무소인 줄 알았습니다. 국회에 진출하면 가장 먼저 낙후된 이곳을 시민들이 정을 붙일 수 있는 위성도시로 가꾸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지지해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우선 오리걸음부터 고치겠습니다.”

대한민국 처음으로 코미디언 출신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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