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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연기자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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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후의 여성탐구] 연기자 강수연

입력
200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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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의미있는 삶이 ‘어떤 성격을 완성하는 것’. 순간의 미세한 성격을 표현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강수연에게 연기란 관객의 감성을 움직여야 하는 고도의 두뇌게임이다.SBS TV의 ‘여인천하’는 몇 달째 한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을 맺는다. 그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깊은 내면이 한순간 투사된다. 현장만이 즐겁다. 오직 연기만 생각한다. 그녀가 강수연이다.

“TV에서 많이 봤어요.”내게 건네는 말. 정작 그녀가 들었어야 할 말이다. 그렇게 예의를 갖춘다. 그렇고 그렇게 이어지는 평범한 질문들. 곧 눈빛은 흥을 잃고 긴장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도무지 숨기지 못하는 성격.

심지어 ‘인터뷰는 재미없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공격적이다’라는, 다른 사람들은 직접 꺼내기 삼가는 지적을 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솔직하고 당돌한 태도.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럼 좋다고 하죠 뭐라고 하겠어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냐고 묻자 “평범한 분”, 심지어 결혼에 대한 질문에 “짜증나요”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거의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들어왔을 것이다.

보편적인 질문 그 자체는 분명 재미없다. 그러나 그런 말은 사람이 교류하는 데 어느 정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니다.

분장을 한 트레머리를 풀어 내렸다. 500㏄콜라 한 병은 됨직한 무게. 그 무게를 머리에 이고 아침 8시부터 6시까지 촬영한다. 목 부근이 짓눌려 안경을 쓰면 안경까지도 무겁다고 여길 정도다.

그래도 그에게 트레머리는 ‘참을 만한 것’이다. 연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의 통상적인 질문들은 무의미하다. 연기와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두 유형의 연기를 한다. 일상 생활의 외형적인 면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동적인 연기와 내면의 깊은 정서가 표현되는 정적 연기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통상적인 삶이 연기의 주제가 된다. 일상 생활에서의 크고 작은 충돌이 자료가 되고 자연 그 모습이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다. 후자는 주관적 의식의 밑바닥 세계가 주제가 된다. 다르다.

자신이 힘든 점을 남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인 감정은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 “자기 감정을 질질 흘리고 다니고 싶지 않다”고 표현한다.

외형적인 사생활까지 감추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내면적인 정서가 일상에서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다. 그 힘든 사춘기시절 부모에게조차 어려운 점을 털어놓은 적은 없다.

그래서 타고난 내면 연기자다. 연기자가 되기 전부터 그랬다. 연기와 관련된 10가지 중 한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9개는 지겹다.

연기 그 자체만이 예외다. 나머지가 지겨운 이유는 연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서 노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노출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만 공개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말할 때는 귀기울여 들어준다. 친구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통상적인 질문을 할 리 없고, 해도 문제없다. 10년 지기들. 하지만 아무나 친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솔직해야 한다. 둘째 자신만 위하는 이기적인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다. 서로 상처만 남을 뿐이니까. 셋째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인간은 싫다. 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친구에 대한 기대치와 의존도가 높은 만큼, 좋아하는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는일도 많다. 뜸하게 만나는 것은 싫다. 멀어져 가는 느낌도 참을 수 없다. 그만큼 친구가 중요하다. 반대로 친구들은 그녀가 직설적 표현으로 상처를 준다고 불만이 많다.

친구가 잘못하면 참지 못한다.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지 판정될 때까지 밤을 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이렇게 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친구와의 조그마한 갈등도 용납할 수 없다. 친구관계는 반드시 갈등 없는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친구는 그의 삶을 이완시키는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관계나 연기영역과 상관 없는 다른 관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두 영역에서만 노출이 자연스럽다. 유머도, 그 싸늘한 독설도.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와는 거의 부딪치지 않는다. 털털하고 소녀 같은 어머니와는 어릴 적부터 충돌이 많았다. 엄마 때문에 24시간을 운 적도 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사랑은 컸지만 간섭은 없었다.

어려서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도움이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딸을 연기자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두 분.

개인적인 일을 부모와 상의하지는 않는다. 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실패하고 나서도, 또 스스로 결정한다.

아역배우가 성인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불문율을 깨고 정상에 오른다. 그것도 세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번 타는 것으로. 지금 평범하게 산다지만, 그래도 ‘최고’는 유지되어야 한다. 상의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서도, 주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어차피 혼자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은 네 살부터 시작된 것이다. 스승은 자기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 연기자도 복제할 수 없는 탁월한 내면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고독하다.

/김병후

● 약력

▲1966년 서울출생

▲1971년 TBC ‘똘똘이의 모험’ 으로 데뷔

▲1982년 풍문여고, 1993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1986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1988년 ‘씨받이’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 1990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대종상 여우주연상

▲19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2년 ‘경마장 가는 길’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2001년 ‘여인천하’로 SBS 연기대상 대상후의 여성탐구

■지인들이 보는 강수연

예쁘고 깜찍하고 당돌한 아이. 그녀의 공식 데뷔작인 1971년 TBC ‘똘똘이의 모험’의 조연출을 맡았던 이근용 SBS 홍보팀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라며 감탄한다.

‘똘똘이의 모험’은 어린아이들이 새총으로 간첩을 잡는, 지금으로서는 좀 황당할 법한 내용이지만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엔 새총이 없어 못 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어린이 드라마였다.

특히 강수연이 맡았던 주인공 ‘이쁜이’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촬영장마다 이쁜이를 보러 온 사람들이 동네를 가득 메웠고, 당시 초등학교 남자 아이들에게는 이쁜이와 말 한마디 나누는 게 ‘꿈’이었다.

이 팀장은 “잘 놀다가도 카메라 앞에서는 금세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등, 어린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전환이 빨랐다. 그 나이(7세)에도 할 얘기는 똑부러지게 다 하는 아이였다”라고 기억한다.

인형같이 예쁜 데다, 천부적인 재능이 엿보여 스태프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대로만 크면 대스타가 될 것이라고들 말했다.

하지만 똑부러지고 당돌한 모습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다. 데뷔 이후부터 강수연을 알고 지낸 디자이너 지춘희씨는 “당장 현금화될 수 있는, 100만원 이내가 아니면 돈 계산을 잘못한다. 의외로 맹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일에 대해서만은 철저하게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과연 저사람이 배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탈하고 평범하게 옷을 입고 소품을 걸친다.

도도하다 못해 다소 오만하게도 느껴지는 태도는 절대 위신을 세우기 위해 가장된 ‘이미지’가 아니다.

지춘희씨는 “이미지 관리를 안 한다는 게 강수연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오랜 연예계 생활에도 불구하고, 싫은 사람에게 표내지 않고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표정관리’ 같은 것은 절대 못한다. 그만큼 솔직하고 외곬이며 단순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마음을 쓰고 배려하는 등, 속 정도 깊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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