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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2)코미디 소재 이렇게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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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2)코미디 소재 이렇게 구했다

입력
200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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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다.불량식품 제조업자가 죽어 저승에 갔다. 큰 칼로 단번에 죄인들의 목을 싹둑 자르는 염라대왕. 그런데 유독 자신에게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십 번이나 칼을 내리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헤매십니까?”라는 제조업자의 고통스러운 질문에 염라대왕의 능청스러운 답변. “얘야, 이 칼이 불량품인가 보다.”

이 이야기는 내가 1980년대 중반 밤무대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이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국에 퍼졌다. 내용이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후배 코미디언들이 내가 유흥업소에서 말한 내용을 몰래 녹음해 그대로 베껴 써먹은 것이다. 내가 스크립터(구성작가)로부터 돈을 주고 산 것을 갖고 그들이 장난을 친 셈이다.

나는 TV데뷔 후 2, 3년이 지난 때부터 개인 스크립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20년 만에 힘겹게 얻은 인기를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다.

특히 82년 첫 미주순회공연 때 만난 미국 코미디언 자니 카슨은 좋은 본보기가 됐다.

방송사가 제공하는 기본 스크립터 외에 자신이 직접 각 분야별 스크립터를 둬 다양한 코미디 소재를 발굴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70대가 돼서도 무대를 지키려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스크립터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4년 처음으로 모집한 것이 대학생 스크립터였다.

등록금 전액을 부담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무려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수준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그들이 준비한 원고를 살펴보니 하나같이 말장난만 늘어놓았다. 그래도 그 중에서 4명을 뽑아 본격적인 코미디 소재 사냥을 시켰고 이들을 통해 전국에서 떠도는 재미난 이야기를 채집했다.

이들이 발굴한 이야기 중에 하나를 소개한다. 서울 강남에서 대대로 배추밭을 해오던 노인 한 분이 있었다.

그런데 강남 개발로 순식간에 땅부자가 된 이 양반이 돈 쓸 줄을 몰랐다.

“얘, 어멈아, 다른 집 보니까 냉장고인가 뭔가를 들여 놓았더라. 우리도 하나 장만하자.”

그러나 이번에는 냉장고 안에 무엇을 넣을지 몰랐다. 고민 끝에 넣은 것이 맨 날 먹어온 간장 통. “어멈아, 간장도 차가운 간장이 맛있구나!”

내 아이들도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창원(昌元)과 미숙(美淑), 고등학생 현숙(賢淑)이 큰 고생을 했다.

주제가 정해지면 이들은 주제와 관련된 소재를 찾아내 내게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색다른 소재와 아이들의 젊은 감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내가 85년 1월부터 6개월동안 한국일보에 ‘뭔가 말 되네요’라는 칼럼을 연재했을 때 이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칼럼에 등장한 이야기 한 토막.

“아빠, ‘대한민국’의 ‘한’이 무슨 한자에요?” “임마, 그게 무슨 ‘한’자인지도 모르냐? 그건 한국일보 ‘한’자야.”

아이와 나의 기상천외한 질문과 대답은 계속된다. “아빠, 그러면 ‘달린다’라는 뜻의 영어단어 ‘런(run)’의 과거형은 뭐야?” “뭐, 과거형? 야, 유행가에도 있지만 과거는 물어보는 게 아니야. 현재가 중요한 거야.” “그러면 유리수와 무리수의 차이는 뭐야?” “그것도 모르냐? 게임 스코어가 유리하면 유리수고 게임에 지고 있을 때 무리를 하면 그게 무리수야. 이제 그만 하자.”

지금 생각해보면 80년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밤무대의 레퍼토리가 알려지거나 한국일보 칼럼이 나간 후, 사람들이 “그 많은 소재를 어떻게 구하세요?”라고 질문했을 때가 좋았다.

비록 그 이면에는 피 말리는 노력이 깔려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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