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이다.스타들을 상대로 사기치는 놈, 권총으로 협박하는 놈, 어린 자식이 담배 핀다고 뭐라 그러는 놈…. 노상방뇨를 하다 경찰에 붙잡힐 뻔한 일도 있었다. 하나하나 소개하겠다.
나와 조용필(趙容弼)이 1984년 영국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는 프랑스 문화부 초청으로 파리에서 4일 동안의 공식 일정을 마친 뒤 느긋하게 유럽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독일 스페인을 거쳐 런던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건은 시작됐다. 호텔 예약부터 시내관광까지 런던 여행 일체를 책임진 한국인 가이드가 약속 시간인 오후9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행경비 중 일부를 그 가이드에게 송금한 상태였다.
우리는 가이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아내는 “제 시간에 나갔는데요. 곧 도착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말은 안 통하지, 배는 고프지, 여행하면서 늘어난 짐은 잔뜩 쌓여있지…. 당시 한국 최고의 스타 2명이 졸지에 미아신세가 된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마침내 밤12시가 다 돼 그 친구가 나타났다. 보기보다 멀쑥한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늦었습니다. 제가 선생님들 팬입니다. 존경하는 스타 분들을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예의 바르게 나오니 뭐라 그럴 수가 있나. 오히려 교통사고 와중에도 우리를 잊지 않고 나온 게 반갑기만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숙소가 공항 근처 허름한 모텔이 아닌가.
공항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우리는 분명히 런던 시내 고급 호텔로 예약을 했었다.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느냐?”라고 물었다.
“선생님들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런던에는 한국처럼 고급호텔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수수하거든요. 이 모텔이 그나마 가장 고급에 속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성수기라 시내에는 방도 없어요.”
순진한 우리는 그런가 싶었다. 검소한 나라 영국이 아닌가. 너무 피곤하기도 했다.
다음날 오후1시 모텔 로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7시. 우리는 간단히 모닝커피를 한잔씩 마신 뒤 시내 구경도 할 겸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그런데 낯선 차창 밖 풍경 사이로 낯익은 호텔이 하나 보였다. “용필아, 저거 혹시 하얏트 호텔 아니냐?”
우리는 당장 택시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방 있습니까?” “많습니다.” “여기가 런던이 아닌가 보죠?” “런던 한복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었다.
“그러면 한국사람이 묵기에는 뭔가 불편한가 보죠?” “호텔 바로 옆에 한국식당이 2개나 있습니다. 한국인 유학생이 가이드도 해드립니다.”
불길했다. 고급호텔 대신 싼 모텔을 잡아 그 이익을 챙기려고 한 게 분명했다.
“주일이형, 혹시 그 놈 사기꾼 아닐까?” “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게 사기를 치겠냐?” 우리는 당장 모텔로 돌아갔다.
다행히 짐은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 한마디 할까 생각했지만 동포끼리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그만 뒀다.
만약 그때 그 가이드 놈과 같이 여행을 했으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두 명의 스타를, 그것도 둘이 같이 있는데도 버젓이 농락했으니 지금은 오히려 그놈의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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