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 토크 쇼에서 재미동포 코미디언 자니 윤을 봤다.5월 병실로 찾아왔을 때 경인방송(iTV)에서 새 토크 쇼를 맡을 것 같다고 하더니 바로 그 프로그램인 모양이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 형의 모습이 참 부럽다. 30대 초반에 일찍 담배를 끊고 건강관리를 철저히 한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윤 형과 비슷한 나이에 유명을 달리 한 분이 있어 내 마음은 지금 몹시 괴롭다.
13일 오후였다. 분당 집에서 TV를 보다가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날 오전8시50분에 박정구(朴定求) 금호그룹 회장이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는 뉴스 속보였다. 이후 2~3일 동안 나는 거실에서 거의 누워지냈다.
그는 국립암센터 바로 내 옆 병실에서 투병 중이었다. 내가 538호에 있을 때는 그가 518호에, 내가 518호에 있을 때는 그가 538호에 있었다.
전에 ‘나의 이력서’에서 언급했던, 응급실에 자주 내려간 518호 환자가 바로 박 회장이었던 것이다. 개인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보다 먼저 국립암센터에 들어온 그는 죽기 며칠 전에도 내 손을 꽉 잡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열심히 살아봅시다.” 그런 그가 이제 고인이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암이란 놈은 결국 돈과 정성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국립암센터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그 분을 간호했던가. 그러나 이제 모두 허사가 됐다.
그는 참으로 인상 좋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늘 의리를 중시했고 선 굵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후반 내가 호텔 디너쇼를 열 때였다.
처음에는 누군지도 몰랐다. 공연이 끝나자 내게 “공연 참 재미있게 봤다”라고 말하며 금일봉을 건넨 사람이 바로 박 회장이었다.
90년 9월에는 아시안게임이 열린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무려 보름을 같이 보냈다.
나는 가수 김세레나, 탤런트 이덕화(李德華) 등 연예인 자원봉사단과 함께 한국선수단을 응원하러 베이징에 머물던 때였다.
하루는 우리 연예인이 묵고 있던 호텔로 1만 달러를 보내주기도 했다. “맘껏 먹고 응원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다.
서울행 비행기안에서도 조중현(趙重勳) 당시 한진그룹 회장, 김우중(金宇中) 당시 대우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과 함께 진지하게 사업 얘기를 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8일에는 박종환(朴鍾煥) 감독이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왔다. 박 회장 부음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내가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박 감독은 “상심하지 말라”고 말했다. “주일이, 한방치료를 받아보는 것은 어떠냐?”고도 물었다.
한방이라! 솔직히 이 대목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양방 치료를 받던 박 회장은 결국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양방은 암이라는 놈을 째고 괴롭힐 뿐 무슨 특별한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비해 한방은 몸을 보호해줄 어떤 약이라도 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박 감독은 나만 좋다면 경희의료원에 아는 사람이 있나 당장 알아보겠다고 한다.
이제 다시 병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힘이 다 빠져버려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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