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이슬람 사회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 왔다. 지난 수십년 간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아랍권의 반미 감정은 9·11 이후 극단으로 치달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의 전반적인 교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급증한 반 서방 테러와 함께 세계 곳곳, 특히 기독교 문명권에 살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은 상대 문명 혐오증으로 인한 역테러에 직면했다. 미국의 보복에 공동 표적이 된 이슬람권은 각국의 이익에 따른 합종연횡 속에서도 전례없는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거세진 반미 역풍
테러의 배후를 놓고 불거지기 시작한 갈등은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명 간의 반목과 그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9·11 직후 아랍계가 배후로 지목되자 강하게 반발했던 이슬람 사회는 미국이 테러 용의자로 19명의 아랍계 납치범과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자 사실을 수긍하면서도 아랍 전체가 테러 세력으로 매도되는 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1년 간 인도, 파키스탄, 튀니지 등에서는 반서방 테러가 계속됐다. 이집트의 한 서방 외교관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보호 아래 온갖 유엔 결의를 무시해 온 이스라엘과 대비돼 이슬람권의 반미 정서를 한층 고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방과의 교류는 급격히 감소했다. 관광지로 각광받던 이집트와 튀니지 등을 찾던 서방 관광객들의 발길은 테러 우려로 뚝 끊겼다. 올 상반기 미국의 대 사우디 수출은 미국의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향정책에 반발한 사우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30.5%가 떨어져 1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상대국 문화를 연구하는 유학생 교류도 급감했으며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 가운데 2,000억 달러가 회수됐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공공의 적 이슬람?
9·11 이후 반 테러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는 최악의 유혈사태를 불러왔다. 자살폭탄 공격과 보복 군사작전 속에 지난 1년 간 이-팔 지역 희생자 규모는 예년의 4배에 육박했다.
전세계 이슬람 교도들은 서방세계에 만연한 '이슬람=테러'라는 고정관념의 희생자가 됐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수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와 아랍풍의 외모만으로 무차별 검문검색, 취업 거부 등의 차별을 받고 있다. 급기야 올초에는 아랍계라는 이유로 미국 시민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슬람이여 단결하라
점차 현실화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더해 미국이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아랍권은 역내 결속 다지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 이래 앙숙 관계였던 사우디와 이라크가 최근 관계정상화에 나서는 한편, 바레인과 이란 역시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아랍의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자국 실리에 기반한 친미 정책을 펴왔던 사우디, 이집트, 터키 등도 이라크 공격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관측통들은 미국이 효과적으로 후세인 정권만을 제거한다면 아랍권은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하지만 '포스트 후세인' 정권의 성격과 미국 주도의 질서재편에 대한 아랍권의 경계와 우려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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