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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콜린 롤리의 용기

입력
200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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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롤리. 올해 마흔 일곱 살 난 그녀는 네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요원이다. 아이오와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부터 FBI 요원이 되는 게 꿈이었고, 아이오와 주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80년 FBI에 들어갔다. 최근까지 미네소타주의 미네아폴리스 지부에서 일해온 그녀는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유능한 FBI 요원으로 좋은 평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소방관, 경찰관, 구조대원 등 '9·11 테러'로 숨진 수많은 사람과 어깨를 견줄 만한 '또 하나의 9·11 영웅'이다.그녀가 속한 FBI 미네아폴리스 지부는 '9·11 테러'가 발생하기 한달 전쯤인 지난해 8월15일 모로코계 프랑스인 자카리아스 무사위를 체포했다. 무사위가 다니던 항공학교로부터 신고를 받고 테러용의자로 의심, 이민국(INS)으로 하여금 비자기간이 초과한 그를 체포토록 한 것이다. 무사위는 언론에 의해 '20번째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유일한 생존 테러 용의자로서 연방법원에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당시 납치된 4대의 여객기 중 국방부에 돌진한 여객기에만 4명의 테러범이 탔고, 나머지 3대에는 5명씩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네아폴리스의 FBI 수사팀은 무사위의 신원조회를 프랑스 정보기관에 요청했고, 며칠 뒤 "그가 이슬람 과격파 조직에 속해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의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러나 수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에 대한 영장청구를 FBI 본부에 요청했으나 '범죄혐의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리조나주의 FBI 피닉스 지부에서 이미 한달 전에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테러공격을 위해 미국의 항공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했는데도, FBI 본부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를 모두 묵살했다. 답답한 마음에 중앙정보국(CIA) 쪽에 무사위 체포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자 FBI 본부에서는 오히려 "본부 허락 없이 CIA와 접촉했다"는 질책만이 내려왔다. '9·11 테러'가 있은 후 추가로 혐의사실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무사위에게 즉각적으로 영장이 발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막상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이 감행되자 로버트 뮬러 FBI국장은 "테러공격에 대한 정보를 FBI가 사전에 갖고 있었더라면 이를 막기 위해 무슨 조치라도 했을 것"이라고 잡아뗐다. 며칠이 지나 FBI 본부의 무능함과 관료주의적 속성으로 인해 테러공격에 관한 정보와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뮬러 국장은 "설사 테러 용의자에 대한 수사를 했다 하더라도 테러공격 자체는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교묘하게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FBI 등이 테러에 대한 사전대응을 소홀히 했다는 논란은 정치권과 행정부 사이의 소모적 공방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콜린 롤리는 5월21일 뮬러 국장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쓴다. A4 용지 13쪽 분량의 이 편지에는 미네아폴리스 지부에서 일어난 일과 FBI 본부의 무능한 일 처리,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교묘한 말 바꿈의 과정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 편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부시 행정부는 FBI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토안보부 설치 등 대책을 내놓았다. "모든 사실을 제대로 알려 일어난 일에 대해 올바로 평가하고 그로부터 우리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한 롤리의 뜻이 최소한의 결실을 본 것이다.

'9·11 테러' 1주년에 관한 기사가 실린 아침 신문의 사회면에 1975년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중앙정보부가 관련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사건 말고도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 등 많은 의문사 사건, 지난해 물의를 빚었던 수지 김 간첩조작 사건 등이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잘못된 조직 논리'에 함몰돼 쉽게 그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왔다. 이제 진정한 민주화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에도 콜린 롤리 같은 영웅이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신재민 논설위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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