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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명소/"바람아, 날 희롱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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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명소/"바람아, 날 희롱해다오"

입력
2002.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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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단풍과 더불어 가을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단풍이 오색찬란한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억새는 흰색의 단조로움으로 스산하게 치장한다. 그래서 억새가 오히려 가을의 정한(情恨)에 가깝다. 가을 나들이에 적합한 전국의 억새명소를 찾아간다.

▶명성산/경기 포천군, 강원 철원군

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커다란 바위산에 올라 설움에 복받쳐 엉엉 울었다. 그러자 산이 함께 울었다. 그래서 산의 이름이 '통곡하는 산(鳴聲)'이다. 이름처럼 명성산은 가을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고집스러운 이마를 가진 삼각봉의 9부 능선에 어마어마한 억새 평원이 펼쳐진다. 명성산의 억새는 남한지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주말부터 등산객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정상을 바로 공략하는 코스는 매우 가파르지만 우회하는 코스를 이용하면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도 잘 닦여있어 왕복 3시간 정도면 오르내릴 수 있다.

명성산이 억새의 명소로 더욱 이름을 날리는 이유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그 경치에 매료돼 별장을 지었다는 산정호수가 등산로의 시작이다. 비선폭포, 등룡폭포 등 등산로 곳곳에서 만다는 계곡의 아름다움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억새철이 아니더라도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과 산정호수에서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군부대의 훈련이 있을 때에는 입산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사전에 확인할 것. 산정호수 관광지부 (031)532-6135

▶화왕산/경남 창녕군

화왕산은 봄 가을, 일년에 두 번 매혹적인 색깔로 옷을 갈아 입는다. 봄에는 온통 산을 불태우는 듯한 진달래가 압권이고, 가을이면 정상의 평원이 억새의 물결로 가득 찬다.

3시간 남짓한 화왕산 산행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창녕여중에서 시작한다. 40분쯤 오르면 도성암. 통도사의 부속암자로 깔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성암에서 정산에 오르는 50여분의 여정은 고통스럽다. '환장고개'로 이름 붙여진 이 가파른 언덕은 네 발로 기어올라가야 한다. 고개가 끝나는 곳이 정상. 화왕산성이 에워싼 가운데에 밋밋한 분지가 있는데 이 곳이 억새 군락지다. 5만6,000여평이 분지에 억새꽃이 가득하다.

화왕산에 들렀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우포늪. 원시의 생태계를 간직한 국내 최대의 늪지대이다. 이 곳에서 억새와 비슷한 갈대의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창녕군청 문화공보실 (055)530-2241

▶사자평고원/경남 밀양시

한반도 최대의 억새군락지로 꼽히는 곳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가지산과 재악산 사자봉의 사이를 잇는 사자평고원은 넓이가 125만여펑에 달한다. 광평추파라 하여 가지산의 연봉인 재악산 8경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힌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방법은 표충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과 쌍폭포를 지나 고사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첫번째 길은 20∼30분 정도를 단축할 수 있지만 고개가 가파르고, 쌍폭포로 돌아가는 길은 완만하다. 고사리마을에서는 찻길을 따라가면 된다.

사자평을 찾는다면 사명대사의 정기가 어린 표충사에 들러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3,000여 승병을 이끌고 호국불교의 기치를 올렸던 사명대사가 수도하던 곳이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물 영정이 있다. 밀양시 단장면사무소 (055)356-1301

▶제주 한라산

가을의 한라산 자락은 몽땅 억새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가 완만해 접근하기도 쉽다. 한라산을 빙 도는 순환도로는 물론 관통로 곳곳에서 억새를 발견할 수 있어 따로 등반이 필요 없다. 가장 유명한곳은 성산 일출봉에서 성읍 민속마을을 연결하는 1119번 지방도로의 양켠과 북제주군 조천읍이다.

1119번 도로는 '억새오름길'이라고 불린다. 오름이란 제주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분화구 언덕을 의미한다. 한라산을 배경 삼아 오름 위에 얹혀있는 억새군락은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긴다. 조천읍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이 있는 곳은 교래리 샘물공장 앞. 일명 산굼부리로 불리는 곳이다. 1118번, 1112번 지방도로의 교차점이다.

5만여평의 평원에 억새가 바다처럼 펼쳐 있다. 솜구름이 내려온 듯한 그 곳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제주의 억새명소를 또 한군데 꼽으라면 단연 마라도이다. 가을이 익으면서 섬 전체가 완전히 억새풀에 뒤덮힌 억새섬이 된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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