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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황대권/"철창 속 절망의 시간 야생초는 희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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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황대권/"철창 속 절망의 시간 야생초는 희망이었죠"

입력
2002.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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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1985년 어느날, 황대권(黃大權·47)씨는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미국에서 반정부 인사와 만나고 유학생들과 국내 정치 문제를 토론하기는 했지만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까지 받을 일은 아니었다. 언제 나갈 지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그에게 위안거리는 편지 쓰기와 야생초 가꾸기 단 두 가지 였다.

'야생초 편지'(도서출판 도솔 발행)는 그가 당시 바깥 사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야생초와 관련한 것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땅빈대 박주가리 수까치깨 괭이밥 등 감옥에서 가꾼 야생초의 관찰일기이자 야생초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사색일기이다.

행동의 자유가 거의 없는 감옥에서 그는 왜 야생초를 가꾸려 했고 어떻게 가꿀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단식농성도 하고 교도소측과 다툼도 많이 벌였지요. 그렇게 5년 정도를 보냈더니 건강이 너무 나빠졌습니다."

기관지염과 요통, 치통이 특히 괴로웠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는 그때 스스로 치료를 하기로 결심하고 그 방법으로 몸에 좋은 야생초를 섭취키로 한다. 야생초는 수감돼 있던 안동교도소 운동장과 하수구 부근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에 날려와 자라던 것들이다.

그는 야생초를 운동장 한 쪽에 옮겨 심었다. 교도소측이 제지했지만 "장기수인 내가 이 짓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2평 남짓한 화단을 만들었다. '사회참관'이란 이름으로 1년에 한 두차례 소풍을 가서도 산에 있는 야생초를 옮겨와 심었더니 화단에는 100종 가까운 야생초가 자라게 됐다.

그에게 야생초는 그냥 풀이 아니었다. "어린순을 달여 먹고 기관지염과 요통이 나았으니 '특효약'이었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니 귀중한 '옥중동지' 였습니다." 그는 야생초를 가꾸면서 일일이 맛도 보고 그림도 그리면서 이름과 특징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미대 진학을 권유받았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데 책에는 그가 옥중에서 그린 야생초 수채화가 가득하다.

야생초를 가꾸면서 그는 서서히 생태주의자로 변모했다. "재소자의 운동화에 짓밟힌 야생초를 화단에 옮겨 되살리면서 생명의 가치를 배웠어요. 사람이나 풀이나 꼭 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점에서 심지어 생명의 연대감까지 느꼈습니다."

1998년 13년 2개월의 영어 생활에서 풀려난 뒤 전남 영광으로 달려가 농사를 지은 것이나, 국제사면위원회의 주선으로 영국 임페리얼대학에서 생태농업을 공부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감옥에서 만난 야생초 때문이다. 그는 세계 공동체 탐방기인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를 다른 저자와 공동으로 내고 '가비오따스' 등을 번역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제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를 꿈꾸고 있다. 자본주의의 소비문명이 끝나면 생태주의사회가 도래하고 그때는 농업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전망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농약을 잔뜩 뿌리고 다른 풀을 죽여가며 농사를 지어야 할까.

"아닙니다. 야생초가 쓸 데 없이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 자연이, 그 땅이 필요해서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야생초를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야생초도 살고 인간도 사는 그런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 저자가 꼽는 야생초3

"이 나라에서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쇠비름 참비름 명아주를 들겠다. 이땅에 가장 흔할 뿐 아니라 모두가 식용으로, 또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야생초 편지'에는 100종 가까운 야생초가 등장하지만 저자는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3종에 특히 애정을 나타낸다.

▶쇠비름

말 이빨처럼 생겼다 해서 마치현, 오래 먹으면 장수한다고 해 장명채(長命菜)라고 부른다. 키는 한뼘도 안되지만 땅바닥에 붙어 옆으로 자란다. 종창 부스럼 이질 중풍 고환염 요도증 고열 등에 효과가 있다. 잎은 푸른색, 줄기는 빨간색, 꽃은 노란색, 뿌리는 하얀색, 씨는 검은 색이어서 오행초(五行草)라고도 부른다. 다섯 부분은 각각 간 심장 비장 폐 신장에 좋다. 여름에 뜯어 말린 뒤 겨울에 나물로 해먹으면 맛있다고.

▶참비름

시금치와 맛이 비슷하다. 잘 자라고 번식력도 대단하다. 식용으로 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좋아서 달인 물은 이질과 안질에, 씨는 이뇨 지사 등에 효과가 있다. 뱀 벌레 물린 상처에는 잎을 찧어 붙이고 음부가 냉하면 뿌리를 찧어 붙이면 좋다고.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쉽게 채취할 수 있는데 맛이 담백하고 뒤끝이 깨끗하다. 30㎝ 안팎의 키지만 토질만 좋으면 1m까지 큰다.

▶명아주

시금치 참비름과 맛이 비슷하며 전체적으로는 순한 맛. 벌레 물린 자리에 이파리를 찧어 붙이면 가려움이 사라지고 가라앉는다. 키가 30㎝ 정도지만 토질과 기후만 좋으면 2m도 넘게 자란다. 저자는 특히 명아주 가운데 굵은 줄기로 만든 지팡이에 찬사를 보낸다. 짚고 다니면 신경통과 중풍에 효험이 있으며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워 근력이 약한 노인들의 지팡이로서는 안성맞춤이라고.

/박광희기자

위로부터 쇠비름 참비름 명아주. 야생초 그림은 저자가 감옥에서 수채물감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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