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우의 이름 앞에는 1997년 발표한 '암연(暗然)'이라는 노래가 늘 붙어 다닌다. 댄스 열풍이 한창일 때 기타 반주에 목소리만으로 절박한 사랑을 노래한 발라드가 꽤 인상적이었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애창곡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나이 어린 댄스 가수들 틈에서 "치이기 싫어" TV 출연을 별로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얼굴 없는 가수'가 됐다. 그래서 "고한우 입니다"하고 인사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 '암연'을 부른 가수 입니다"하면 사람들은 그제야 아는 척한다. 가수로서 자신을 대표하는 노래가 있다는 건 복 받을 일이지만, 그 한 곡에 갇혀 가수 인생을 끝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때문에 16일 자작곡 '비연(非戀)'을 타이틀 곡으로 한 새 음반을 선보일 고한우에게 '암연'은 자랑스레 내세울 간판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고한우는 기를 쓰고 산을 정복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를 수 있는 데까지만 오르기로 마음을 비웠다. 2집에서 록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험과 "힘을 빼라"는 지인들의 충고 덕분이기도 하다.
'비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암연'의 연장선에 있는 노래다. 멜로디와 분위기, 일기에서 소재를 얻은 노랫말의 끈적끈적한 분위기 모두 전작과 닮았다. 꺾기를 많이 하는 요즘 젊은 가수들의 말랑말랑한 목소리와는 달리 감정을 담아 그냥 내지르는 창법 역시 그가 통기타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던 80년대의 취향이 묻어난다.
'암연'이 그랬듯 한번쯤은 쓰라린 사랑, 금지된 사랑을 겪은 30대 이상에게 어필할 만한 곡이다. "노래에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빌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진한 꽃향기라고나 할까. 첫 곡 '가세요'와 그가 가장 아낀다는 '나를 잊었나'까지 음반 전체가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미국에서 녹음한 사운드만은 요즘 취향과 젊은 사람들의 염두에 두고 전보다 세련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얼굴 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 '비연'은 제가 평생 가수로 남느냐의 고비가 될 거에요. 노래를 찾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연배의 사람들을 위해 좀 움직여 보려고요. 다행히 몇 년 사이에 방송국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하지만 그의 자리는 역시 소극장 무대인가. 2월말쯤 콘서트를 예정하고 있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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