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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8) 타협, 그리고 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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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18) 타협, 그리고 재기

입력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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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만들어 1년간 활동했던 9인조 그룹 '뮤직 파워'는 재기의 몸부림 끝에 나온 결과였다. 그간 내가 이끌었던 4인조 록 밴드에 3명의 금관 주자, 2명의 여자 보컬을 결합한 밴드였다. 나의 록 정신을 잠시 접어 두고,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와의 융합을 모색한 것이다. 록과 댄스 뮤직의 절충은 나에겐 재기의 해법이었던 셈이다. 거기서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국내의 그룹 사운드에서 금관(브라스 밴드)을 도입한 첫 밴드라는 점 정도가 아닐까.뮤직 파워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강산'을 떠올린다. 그 곡은 실은 '더 맨' 시절에 만들어 불렀다는 사실은 이미 밝힌 대로다. 한동안 묵혀 두다 뜻하지 않게 전성기를 맞은 것은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TV 무대, 특히 KBS-TV의 '100분쇼'에 거의 매회 출연해 부른 '단골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그 같은 정황을 잘 말해 준다. 딴 가수들도 불러 제법 인기를 모았던 '아름다운 강산'은 그러나 록 정신이 완전히 사상(捨象)된, 순전히 눈요기 음악이다. 내 입장에서는 록과 댄스 뮤직의 위험한 동거 기간에 만든 사생아였던 셈. 어쨌거나 대중은 좋아 했다.

식구가 부쩍 늘자 그룹 운영과 유지가 당장 급선무였다. 연습은 친구가 빌려 준 도봉산 중턱의 창고에서 아침부터 해 지기까지 하루 7∼8시간 강행됐다. 당시 국내의 록 그룹에서 낯선 존재였던 금관 악기 주자들은 2개월 동안 나의 집중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이후 9명의 멤버는 논현동이 개발되기 전 한 허름한 지하실을 빌려 6개월 지옥 훈련에 들어갔다. 그 지하실에서 함께 찍은 시커먼 사진은 앨범 자켓 뒷면에 수록돼 있다.

그러나 방송의 안과 바깥 사정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데, 당시가 꼭 그랬다. 음악적 발언에 족쇄가 채워졌던 금지 기간 5년 사이에 세상은 완전히 변해, 댄스 뮤직 천하가 돼 버렸던 것이다. '100분쇼'에는 자주 나갔으나 신중현의 음악은 춤을 출 수 없다는 소문이 업계에 좍 퍼져 있었다. 춤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곡을 지은 대가는 만만찮았다. 업소에서 단 하루만에 쫓겨난 적도 있다. 파레스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였다.

앨범 수록곡을 중심으로 몇 곡 연주하고 나니 웨이터가 와서 "빠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디스코로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디스코로 화장은 했지만 록이 중심이다 보니 춤 추기가 힘들다는 것. 미 8군 무대에서 밴드 생활을 12년 해 봤지만, 연주 중인 밴드에게 그런 주문을 하는 경우는 어디서도 듣고 보지 못 했다. 창피한 일이지만 한국의 밴드는 웨이터의 음악 수준에 따라 좌우된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웨이터들의 지적은 매서운 현실로 돌아왔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며 지배인이 태도를 싹 바꾸는 것이었다. 받은 계약금은 단원들에게 나눠주고 말았던 터라, 그 돈을 물어 주는 일이 발등의 불이었다. 우리는 당시 국내 밴드로서는 최고 수준의 개런티로 계약했는데,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아내를 통해 구한 사채 돈으로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주었던 충격은 적지 않았다.

거기에는 또 한 가지, 나이트 클럽측과 밴드 간에 암묵적으로 이뤄져 온 '거래'를 무시한 대가도 있었다. 계약금을 받으면 그 중 일정 부분은 호텔 나이트 측에 떼 주는 관행을 나는 모르는 척 했던 것이다. 그 같은 사정은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잡음이 생기자 단원들은 내가 비즈니스에 서툴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으나 나는 굳이 붙들지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끌고 왔던 나의 음악 아니었던가.

그러나 뮤직 파워에서 했던 '메들리' 시도는 대중적으로 제법 인기를 끌었다. 84년 발표됐던 음반'뮤직 파워 메들리'(서라벌 레코드)가 좋은 예이다.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아름다운 강산'의 합창을 시켜 만들었던 버전은 방송 매체의 단골 메뉴로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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