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신만이 진실을 아는 사건이 있다. 사법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는 안 타깝지만 유죄를 구형할 수밖에 없는 사건도 있다. MBC ‘실화극장 죄와 벌’(월 밤 11시5분ㆍ이하 실화극장)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렇게 법 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실화극장’을 보면서 법정에서 오가는 검찰과 변호인 측의 엇 갈린 시각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낀다. 또 부실한 초동수사, 물증 없이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 관행, 강압수사, 허술한 검시제도 등 우리 사 법제도의 현주소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9회분이 방송돼 강 모양 유괴살해사건, 이태원 대학생 살해사건 , 인기가수 김성재 살해사건, 김기웅 순경 살인누명 사건 등 논란이 된 사 안을 다뤘다. ‘실화극장’은 SBS ‘솔로몬의 선택’ KBS1 ‘TV 생활법정 ’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TV의 법정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15.4%) 을 얻고 있다. ‘실화극장’에서 검사역으로 나오는 영화배우 서태화(36)와 전직 검사인 강지원(52) 변호사가 18일 서초동 서울지법 앞에서 만났다. 약속이나 한 듯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색 정장차림을 하고 나온 두 사람은 ‘전ㆍ현직 ’ 검사의 시각에서 ‘실화극장’을 놓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눴다.
강지원 어제 보니 검사가 또 졌대요.(17일 방송분은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496일만에 누명을 벗고 무죄를 선고 받은 사건을 다뤘다)
서태화 글쎄 한번이라도 이겨봐야 할 텐데, 지금까지 9회 방송됐는데 계속 지기만 했어요.
강지원 법정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무죄사건을 많이 다룰 수밖에 없겠지요. 외국의 법정 드라마를 봐도 검사는 멋진 변호사한테 항상 무릎을 꿇어요.
서태화 그런 줄 알았으면 저도 변호사역을 맡을 걸, 후회 되네요.(웃음) 검사역을 맡아보니 피의자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때는 인간적으로 봐주고 싶기도 하지만, 법의 형평성 때문에 중형을 구형하며 인간적 고뇌를 느끼게 됩니다.
강지원 사적으로 만났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딱한 피의자가 많아요. 하지만 검사라는 직책 때문에 냉정할 수밖에 없어 괴롭지요. 어때요, 대사가 어렵지요? 특히 법정에서는 논리적인 말을 사용해야 하니까 더 그럴 거예요.
서태화 녹화 이틀 전부터 대본을 받아 들고 어려운 법률 용어와 딱딱한 말투에 맞춰 대사 연습을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초반에는 실수도 많았어요. 형사 사건의 '피고인'을 '피고'라고 불러 시청자에게 호되게 혼났어요.
강지원 실화극장은 사건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검사의 변론과 피고인의 진술 대목은 재연 드라마로 묘사하니까 더 실감이 나더군요. 방송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서태화 제작진이 한달 전부터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수사기록을 살펴보고 담당 판사, 검사, 변호사를 직접 만나요. 법정 공방이 치열했던 사건을 다루다 보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거든요. 대본 작업에서도 사건의 큰 줄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판의 쟁점을 압축해야 하는 반면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는 진술서의 토씨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어요.
강지원 국내 법정은 정적(靜的)인데 '실화극장'은 매우 박진감 있는 장소로 묘사했더군요. 검사와 변호사가 법정 안을 오가며 동적(動的)으로 변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배심원 앞에서 변론하는 미국 법정에서 따온 것 같더군요. 원래 국내 법정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직접 논박을 못 하게 돼 있지만, TV에서 그렇게 해 보이니 재미있더군요.
서태화 저도 방송을 준비하면서 서울지법 법정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우리 법정은 매우 조용했어요. 졸리기도 하고요.
강지원 아무래도 일반적인 형사 사건은 기계적으로 처리하게 돼요. 그렇다고 법정이 재미없는 것만은 아니에요. 전직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도 피고인석에 섰잖아요. 아마 이런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을 거예요.
서태화 저도 같은 생각인데 이상하게 그 동안 법정을 소재로 한 영화는 번번이 실패했어요. '박대박'은 그나마 코믹 터치로 법정을 다뤘는데도 흥행에 실패했을 정도에요.
강지원 성악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목이 트여서 그런지 TV에서 보니 쩌렁쩌렁한 것이 정말 검사 목소리 같더군요. 검사에 대한 인상은 원래 강인하고 냉혹하게 그려지기 마련이지만, 좀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요즘 검사들이 고생하는데도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못 주고 있으니 더욱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사실 제가 청소년보호위원장 시절, 주위의 만류에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코너에 나가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던 사람 아닙니까.(웃음) 그래서 더 안타깝네요.
서태화 부패와 싸우고 정치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모래시계' 검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검사역을 맡았으니 이왕이면 멋진 검사의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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