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동안 한반도 질서와 국가적 생존 양식, 국민 의식까지를 지배한 한미동맹 관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북한 핵위기와 주한미군 재배치 등을 둘러싸고 일찍이 없던 갈등과 긴장을 보이고 있는 한미동맹 관계의 앞날은 국가적 진로와 동북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일보는 창간 49주년 특집의 하나로, 한미동맹 5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한 차례씩 4회에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 주
한미동맹 50주년.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사이 한미동맹은 '영욕의 회전문'을 돌고 또 돌았다. 부침을 거듭해온 동맹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한국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혈맹'으로 묶였지만 처음부터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관계로 맺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미국 없이는 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웠고 그로 인해 불평등한 한미관계는 한국민이 감내해야 할 '안보비용'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부풀려진 한국민의 민족적 자긍심은 더 이상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 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이로 인한 촛불시위, 노무현 정부 출범은 동맹의 변화를 몰고 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전문가들은 대등한 한미관계 설정의 최대 걸림돌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과 전시 작전 통제권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1966년 처음 체결된 SOFA는 몇 차례 개정으로 '형사재판권 자동 포기' 등 독소조항이 제거됐으나 여전히 우리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지난해 여중생 사망 사고 재판 결과는 SOFA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현행 SOFA는 양국의 원칙적인 수사협조만을 규정하고 있어 우리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및 공조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 공무 외 범죄에 대해 '미군이 재판권 포기를 요구할 경우 한국은 호의적으로 검토한다'고 돼 있는 조항도 개선돼야 한다. 공무증명 여부를 미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미국 관리의 입회 없이 이뤄진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것도 한국의 사법 주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상징처럼 간주된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은 한국으로 반환됐으나 전시작전통제권은 여전히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는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다.
국방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고, 인사 작전 군수 정보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군 지휘권(통수권)은 한국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상 전시 군령권을 외국 군에 넘겨준다는 사실은 자주국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과거 수직적 안보동맹은 이제 수평적 '포괄 동맹'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미 양국 정상은 5월 15일 동맹을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포괄동맹은 지금까지의 단순한 안보차원의 동맹이 아닌 경제, 인권, 대테러, 해상로 보호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파트너십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그래서 더욱 SOFA개정과 전시작전권 반환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주한미군 대체비용 16조∼31조원
국방부는 현재 3만 7,000여명 규모인 주한미군의 무장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84억 8,500만 달러, 이를 포함한 전체 운영 유지비는 연간 140억 달러에 이른다고 평가한다.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약 2조 원대, 140대의 M1 A1 전차는 대당 60억원이고, 서울 등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MLRS) 30여문은 대당 50억원이다. U-2 정찰기는 한번 임무수행에 약 100만 달러(12억원)가 소요된다.
국방부는 주한 미군 대체 비용이 최소 16조원에서 최고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면서 특히 미군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큰 분야인 대북 전략·전술 정보는 화폐가치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방연구원은 최근 '참여정부의 국방비전과 적정 국방비'라는 책자에서 미군 철수시 국방비 부담률이 현재보다 1.95∼2.6배까지 늘고 안보 불확실성이 커져 전반적인 투자 위축, 자본유출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방부 주장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주한미군은 더 이상 북한 도발 억지용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국방부는 주한미군 철수시 엄청난 군비증강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전력이 뒤진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 최신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군사비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보다 적다"고 덧붙였다.
/김정호기자
■전문가 진단
한미동맹 5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미관계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은 일본의 재건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한국의 전략적·경제적 가치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이러한 한국 경시정책은 1950년 한국전 참전을 계기로 적극적인 동맹정책으로 탈바꿈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전략적으로 무가치했던 한국이 1953년 10월 1일 초강대국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이 한미관계의 순항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동맹 체결 자체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전략적 평가에 근거하기 보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적화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간에는 '이익의 비대칭성'이 존재했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한미관계는 본질적 차원보다는 상황의 유동성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던 것이다.
60년대는 한미관계가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대표되는 시기였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 상황은 달라졌다. 베트남전 종식 후 76년 지미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외교정책은 인권과 안보를 연계하기 시작했고, 민주적 가치 공유라는 규범적 기반이 없는 한미동맹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진전을 보이자 한미동맹관계 역시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쌍무관계 보다도 한미관계는 냉전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냉전의 종식은 한미관계를 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93년 북한 핵 문제의 발발은 한미동맹체제가 더 이상 존속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회의론을 당분간 잠재울 수 있었다. 북한의 핵 위협 '덕분'에 버텨온 한미동맹은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반세기만에 가장 큰 도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함께 피를 나눈 형제'와 '함께 피를 흘린 친구' 사이에서 한국민들 상당수가 북녘의 형제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결국 낭만적 민족주의가 남북관계에 파고들면서 냉엄한 현실주의에 기초한 한미동맹관계가 2002년 말부터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 시위의 '공격'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위기 국면에서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월말 취임한 후부터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한미관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론은 지난 5월 15일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도출되었다. 양국 정상은 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의 가치 증진과 한반도 안보 및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포괄적이고도 역동적인 동맹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데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미관계에서 북한 변수가 사라진다고 해도 한국의 안보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중·일간의 지역패권경쟁 가능성은 북한의 위협보다 더 큰 고민을 한국에게 안겨줄 지 모른다. 따라서, 미국이 이 지역에서 '퇴각'하지 않고 지역질서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미간에 강한 연대의 끈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포괄적 동맹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측면에서의 역할 확대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미 포괄적 동맹 관계는 전통적인 군사 위협에 대처한다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안보 위협, 즉 테러·마약·환경오염·불법인구이동·해적 행위 등에 포괄적으로 대처해 나감으로써 역내 다자 안보협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21세기형 동맹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창조적 지혜와 용의주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성 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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