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시절인 1986년부터 4대 정권에 걸쳐 17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원전수거물(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 부지가 전북 부안군 위도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에 따라 방사성폐기물 보관시설 부족으로 2008년 이후 가동에 어려움이 예상됐던 국내 원자력 발전소 운영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모두 18개. 그동안 이들 원전은 각각 임시 보관시설을 운영, 폐기물을 보관했으나 2008년이면 저장 공간이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저장용량이 1만7,400드럼인 울진원전의 경우 지난해말 이미 저장용량의 67%인 1만1,710드럼이나 들어차 2008년이면 한계에 도달한다.
또 영광(2011년), 고리(2014년) 등도 잇따라 포화상태에 이르러 자칫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이 제때에 들어서지 않을 경우 쌓이는 폐기물 때문에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원자력은 국내 총 전력의 40%를 공급하고 있다"며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건설에 5년 가량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2003년 중 부지 선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북 부안군의 유치 신청으로 원전 폐기물 때문에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게 됐다"고 안도했다.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유치 희망지역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전북 부안군이 유치를 자진 신청하게 된 것은 20년간 2조원을 지역개발에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당근' 작전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안군 위도에 예정대로 관리시설이 들어설 경우 부안군은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입게 된다.
이미 예정된 3,000억원의 지역 개발자금과는 별도로 양성자 가속기와 연계된 100만평 규모의 전북대 제2캠퍼스와 매년 40억원 가량의 주민세 증대효과가 기대되는 한수원 본사가 부안군으로 이전한다.
또 위도는 위락단지로 탈바꿈해 2개의 골프장이 건설되며, 부안군 일대 해상에는 숙원 사업인 바다목장도 조성된다.
87년 이후 정부는 선정 방법을 5차례나 바꿔가며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 확보에 나섰으나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95년 관리시설 후보지로 정해진 굴업도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돼 4번째 부지선정 작업이 무산된 뒤에는 유치 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병행하는 '유치공모' 방식으로 부지를 모색해왔다.
부안과 함께 전북 군산과 강원 삼척도 막판까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군산의 경우 지질조사 결과 예상 후보지인 신시도가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신청을 포기했다.
삼척의 경우 근덕면 일대에서 지질조사를 벌인 결과 적합판정을 받아 산자부 관계자들이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였으나, 인근 울진 지역 환경단체가 삼척으로 원정을 나와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바람에 유치신청 마감인 15일 오후 6시까지 신청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현지 주민 반응
전북 부안군이 14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자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위도 주민 대부분과 일부 시민단체, 전북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유치에 찬성의사를 밝히고 있어 당분간 찬반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부안지역 34개 시민·사회·종교단체들로 구성된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부안읍 봉덕리 수협 앞에서 군민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핵반대, 군수퇴진 군민 행동의 날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부안군민의 미래와 생존권이 달려 있는 핵폐기장 유치 문제를 밀실에서 담합에 의해 결정한 이번 유치신청은 무효"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집회에서 조미옥(42·여) 부안농민회 사무국장 등 대책위 간부 5명이 삭발했으며, 김종균 격포발전협의회 사무국장 등 7명은 '핵은 죽음이다'라는 혈서를 쓴 뒤 1㎞ 떨어진 군청까지 가두행진했다. 이들은 군청 앞에서 강현욱 전북지사, 김종규 부안군수, 김형인 부안군의장, 윤진식 산자부장관, 정동락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 '매향 5적 화형식'을 가진 뒤 청사 진입을 시도하다 저지하는 경찰 20개 중대 2,000여명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대책위는 앞으로 부안군수 체포 및 소환을 위한 체포조 운영, 농기계와 어업필증 반납 투쟁과 함께 강 지사와 김 군수 퇴진운동에 나서는 등 유치가 철회될 때까지 무기한 저지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김종성(36·군의원·계화면)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군민의 의사수렴도 없이 그동안의 반대 입장을 갑자기 바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군수에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며 "핵폐기장 유치가 무효화할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반면 부안군 사회단체 연합 대표 이영택(64)씨는 "유치 신청을 환영하며 정부가 약속한 대로 지원한다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어 부안의 미래는 밝다"며 "위도 주민들이 유치를 원할 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도면 진리 이장 서영국(45)씨는 "이미 대부분의 주민들이 유치 서명을 했듯이 차분한 가운데 유치 신청서 제출에 찬성하는 분위기"라며 "어획고가 줄어 경기가 침체된 상황이어서 향후 지역 발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부안=최수학기자 shchoi@hk.co.kr
■ 남은 과제와 일정
14일 전북 부안군이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단독으로 신청했으나, 예정대로 2008년부터 관리시설이 실제 가동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절차와 고비를 남겨두고 있다.
우선 자율유치신청 마감 시한인 15일 오후 6시까지 추가 신청이 없을 경우 16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가 설치되고, 부지선정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부안군 위도의 지질과 해양환경에 대한 다각적인 정밀 검사를 벌이게 된다. 산자부 관계자는 "위도 5곳에 이미 시추공을 뚫고 지질탐사를 벌여 지질여건과 해양환경이 우수한 것을 확인했으나, 최종 부지선정은 정밀검사에서 안전여부가 확인된 7월말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지선정이 마무리되면 사계절 환경영향평가를 추가로 실시하는 한편 내년 4월까지 위도 일대를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예정지역으로 지정 고시하게 된다. 시설물 공사는 2005년부터 시작돼 2007년말께 마무리되며 2008년부터 18개 원전에서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수거물을 이동, 저장하게 된다. 특히 2008년말까지는 원전현장의 작업복이나 폐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이 완공되고, 이후에는 사용후연료와 재처리 부산물 등 고준위 폐기물을 저장하는 시설에 대한 공사가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김종규 부안군수의 전격적인 유치신청에 환경단체는 물론 지역 의회까지 반발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마찰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반대 여론이 확산돼 최악의 경우 주민투표까지 실시될 경우 굴업도나 안면도 등 정부가 부지를 선정하고도 주민 반발로 계획을 백지화했던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철환기자
■ 위도는 어떤곳
위도(사진)는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14.4㎞ 떨어진 섬으로 전북에서 가장 크다.
면적 428만평에 8개리 11개 마을 1,468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어업이나 소규모 농업에 종사한다.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봄, 가을 조기 떼를 잡으려는 고깃배와 장사꾼이 몰려 파시를 형성했다. 지금도 멸치 새우 바지락 김 마늘 등의 산지로 유명하며 여름철에는 피서객이 몰려든다.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의 모델이라는 주장도 있고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위도 앞바다라는 설도 있다. 정월 대보름 풍어를 기원하는 띠뱃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돼 있다. 1993년 10월에는 292명이 목숨을 잃은 서해훼리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부안=최수학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