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논란 속에 내가 아는 한 '경계인'(境界人)이 떠올랐다. 나는 1988년 7월 서울에 온 그를 인터뷰했던 기사를 찾아 다시 읽었다. 그 인터뷰에서 '경계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나는 65년부터 서독 외무성 산하 아시아연구소에서 계간지 '북한'을 만들면서 주체사상에 접했고 곧 열렬한 찬양자가 됐다. 사대주의라는 역사적 교훈과 동서냉전의 현실속에서 작은 나라가 살아 남는 길로 주체사상을 세운 김일성에게 나는 감탄했다. 서방 학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7년 동안 열심히 해설을 썼다. …그러나 72년 2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나의 열광은 산산조각 났다. 그들이 주체사상으로 나라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제국이었다. 인민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였다. 충격과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 해 10월 '남한에도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아들여 서울을 방문했지만 그것이 남한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켰다. 일주일쯤 남한을 둘러본 후 당국자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누가 남한의 인상을 묻길래 '북한이 감옥이라면 남한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돈 권력 자유를 독점한 계층의 부패가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 발언으로 추방됐고 16년간 오지 못했다. …나는 남과 북에 모두 실망했고, 북에서 기피인물이 그러나 가슴 아픈 상황 속에 어떤 쪽에도 붙으려 하지 않았고 남북 모두를 내 민족 나라로 사랑했다. 그래서 16년이 흐른 오늘, 남북관계가 새로 열리는 시점에서 모두에게 조언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나는>
88년 평양을 거쳐 서울에 왔던 조명훈 박사는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남과 북 사이의 경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송두율씨를 보며 진정한 경계인은 조명훈 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씨는 북한을 선택하여 그 쪽의 일원이 됨으로써 경계인의 경계를 넘어갔다. 그는 유신체제에 절망하여 북한의 문을 두드렸다고 주장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김일성 체제를 용납할 수 있었는지 대답해야 한다.
조명훈씨는 서울대 재학 중 유학길에 올라 독일 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에 정착했다. 그는 분단시대의 시련 속에 살아온 많은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다. 송두율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의 선택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나는 1971년 서베를린 신문연구소에서 연수하며 몇 달을 지냈다. 당시 그곳에 있던 한국 젊은이들의 방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국의 군사독재는 극에 달했고 들려오는 소식은 흉흉했다. 고문으로 얼굴에 중화상을 입었다는 재일동포 대학생 서승의 끔찍한 사진과 북의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전단이 베를린 자유대학 캠퍼스에 뿌려지고 있었다.
또 얼마나 가난했던가. 어떤 유학생들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고, 병원 영안실에서 시신을 옮기는 아르바이트가 수입이 높다는 정보를 주고 받았다. 가족을 고국에 두고 돈 벌러 온 광부와 간호사들은 고통스런 적응과정을 겪고 있었다. 북한대사관에 냉면 먹으러 가자고 손짓하는 사람들에 이끌려 갔다가 돈 몇 백 달러 얻어 쓰고 발목이 잡혀서 결국 월북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70년대 베를린의 한국인들은 암울하고 위태로웠다. 송두율씨의 선택이 그런 와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너무 멀리 갔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갔었다는 사실을 속이기 까지 하고 있다.
분단시대 젊은이들의 비극은 사회주의 소멸로 사실상 끝난 지 오래다. 남한의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북한의 체제 파탄이 가속화하면서 이제 우리 젊은이들은 더 이상 남과 북 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선택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늘 허구의 경계인 스토리에 눈물 흘리는 젊은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조명훈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송두율씨에게 조언으로 주고 싶다. <나는 운동권 학생들의 주장과 소원, 조급함과 과격함까지 이해하고 싶다. 민주주의란 지리하고 부질없는 형식이 많은 제도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통해 과오를 최소로 줄인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나도 그들과 같은 젊은 날을 보냈으나 나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오늘 이만큼이라도 말해주는 선배가 있지만 나에겐 없었다. 우리 세대는 자신의 실패와 성공에 대해 들려주는 선배를 갖지 못했다…> /본사이사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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