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이 14일 간의 본격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그 동안 탄핵소추안 가결로 국가 전체가 국론 분열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정치권은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정치권은 탄핵 정국을 '친노 대 반노,'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호로 득표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그 대가로 이번 총선에서는 '공약 실종' '인물 검증 실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당, 후보자, 유권자 모두 이번 총선을 통해 정책 대결을 어떻게 정착시킬까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정치관계법의 획기적인 개정으로 확대된 TV와 라디오를 통한 정당의 정책 홍보 기회는 '탄핵 심판'과 '거대 여당 견제'라는 상대 정당에 대한 비난으로 대부분 채워져 정작 경기 침체나 청년 실업 대책 등에 대한 공약은 마지 못해 마지막에 조금만 언급하고 있다.
선거를 계기로 미진했던 정강정책을 다듬어 국민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정당들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승리만 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몰두하고 있다.
불법적인 금품·음식물 제공 또는 신고시 50배 과태료 또는 포상금 제도 도입으로 돈선거가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후보자들 사이에는 표만 된다면 언제라도 불법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안이한 인식이 아직도 팽배해 있다.
정치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돈 안 드는 선거를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당사자인 후보들이 시작부터 지키지 않는다면 돈에서 해방될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된다.
유권자들은 지금이라도 탄핵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총선을 총선답게 치러야 한다. 정당이나 후보자보다 더 바빠져야 한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정당과 정부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지역을 위해 봉사할 일꾼의 자질, 전문성, 도덕성 등을 세밀히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등록시에 경력, 재산, 병역, 납세, 전과에 대한 사실을 함께 신고했다. 평범한 서민들이 살아가면서 실수로 저지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범법 행위는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경우, 세금을 지나치게 적게 납부한 경우, 투명하고 정상적인 축적과정 없이 많은 재산을 증식·보유한 경우, 사기 전과가 있는 경우 등은 문제삼아야 한다. 특히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혐의가 있는 후보자는 아예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경력사항을 꼼꼼히 살펴 의정 활동을 제대로 수행할 만한 전문성이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만일 유권자의 선거구에 현역 의원이 출마한다면 4년 전 선거 때 공약한 사항을 얼마나 이행하려고 노력했는지,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검증해야 한다. 공약 이행을 위한 지역구 활동이나 입법 활동은 게을리하고 정쟁에만 앞장선 의원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2002년 광역의원 선거에 이어 1인 2표제를 실시한다. 한 표는 지역구 후보자에게, 또 다른 한 표는 정당별 비례대표명부를 보고 선호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는 의미다.
그 동안 우리 선거는 지역주의에 짓눌려 정책적·이념적 대결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지역구 투표에서는 인물의 자질과 도덕성을, 정당 투표에서는 정당의 정책과 도덕성을 투표의 준거로 삼는다면 우리 정치가 정책 대결의 구도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후보자 정보를 진지하게 검토·평가해서 내 손으로 뽑은 국회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윤 종 빈 명지대 교수·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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