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4월9일 전 부천경찰서 경장 문귀동이 인천지방법원에 구속됐다.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된 지 1년 9개월 만이었다. 이로써 세간의 분노를 자아낸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음산한 사건이 터진 것은 1986년 6월이었다. 부천경찰서 경장 문귀동은 부천시 (주)성심에 취업해있던 서울대학생 권인숙을 잡아다 그 전 달에 있었던 세칭 5·3 인천사태(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인지부 결성 대회에 맞춰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 관련 수배자의 소재를 대라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권인숙을 변태적으로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권인숙은 변호사를 통해 이 사실을 여성단체와 언론에 알린 뒤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했고, 권인숙의 변호인단도 사건 관련 경찰 6명을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했다. 당사자 문귀동과 검찰이 이 사태에 대응한 방식은 전두환 정권의 윤리 수준을 표본적으로 보여주었다. 문귀동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자신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권인숙을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맞고소 했고, 인천지검은 문귀동에 대한 수사를 통해 이 엽기적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권인숙의 변호인단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이것이 기각되자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듬해 1월 대법원이 재항고를 받아들임에 따라 서울고법은 그 해 3월 문귀동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고, 다음달 인천지법이 그를 구속했다. 문귀동은 징역5년에 자격정지3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이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나마 법원이 대신 해준 셈이었지만, 서울고법의 재정신청 기각에서 보듯 법원도 군사정권의 외압에 휘둘리고 있었고 문귀동의 형량 역시 저지른 짓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웠다. 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 요즘도 교회 나가는지 궁금하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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