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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마음을 잃어가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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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마음을 잃어가는 전쟁

입력
2004.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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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얻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마음을 얻기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이라크인들의 마음 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미군과 영국군이 이라크인 수감자들을 야만적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1년 전 미군의 이라크 공습을 전쟁게임 보듯 TV를 통해 지켜보던 사람들은 적나라한 전쟁의 현실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의 ABC 방송과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 미러는 충격적인 사진들을 공개했다. 미군과 영국군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을 이슬람교에서 가장 수치로 여기는 알몸으로 만들어 희롱하고, 죽거나 까무러칠 때까지 폭행하고, 그들의 몸에 오줌을 누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광기만 있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테러를 응징하고, 사담 후세인의 폭정으로부터 이라크인들을 구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쟁 명분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종전 선언 1주년을 앞두고 "더 이상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덤이나 고문실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진 몇 장이 공개되자 그 말은 무색해졌다. 사담의 고문실이 사라진 후 점령군이 이라크인들에게 오줌을 갈기고 잔인하게 고문한다면 누가 그 전쟁을 '숭고한 전쟁'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숭고한 전쟁'은 복수와 멸시의 전쟁으로 추락했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우리는 이런 일들을 제거하러 이라크에 갔지 자행하러 간 것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부시 대통령도 깊은 충격을 표시하고 "이것은 일부 병사의 범죄이지 미국인의 기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미군 병사 6명과 영국군 8명은 이라크 죄수들의 인권을 유린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미군 정보당국이 수감자들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해 이 같은 만행을 지시했거나 눈 감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고문에 가담했던 미군과 영국군 병사들은 "상관들은 정보를 잘 얻어냈다고 칭찬하거나 잔혹한 고문 장면을 못 본 체했다"고 잇달아 폭로했다.

"이라크 포로를 때리던 동료 병사의 손목과 발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엄청난 폭력이 행사됐다. 우리는 해방자가 아니라 침략자다. 우리는 결코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 병사는 절규했다.

내년이면 사이공 함락 30주년이 된다. 월남전은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무제한 투입했으나 열악한 장비로 저항하는 월맹군을 이길 수 없었다. 땅을 지배하는 전쟁이 아니라 마음을 지배하는 전쟁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전쟁이었다.

30년 만에 미국은 "전쟁에서는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같은 시련에 봉착하고 있다. 이라크의 반미 집단에 의해 살해된 미군들의 시체가 훼손된 채 길에 끌려 다니고,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일부 장병들이 이성을 잃었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미국이 30년 전의 교훈에서 과연 무엇을 얻었느냐는 냉혹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미국의 중동학자 버나드 루이스는 "오늘 아랍인들의 극렬한 저항은 그들이 기독교 문명에 억압당하고 제압당했다는 모욕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결정적인 모욕을 가한 이번 사태는 친미적인 중동인들까지 자극하여 미국을 '이라크 수렁'에 빠뜨릴 위험이 높다.

미국은 21세기의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미국은, 그리고 미국인들은 미국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까. 세계 최강군인 미군의 일반 장병들은 무력을 뒷받침할 만한 정신무장을 하고 있을까. 로마제국이 외부의 침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붕괴했다는 과거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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