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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당뇨교실 1,000회" 서울백병원 임경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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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피플]"당뇨교실 1,000회" 서울백병원 임경호 교수

입력
2004.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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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후유증에 대해 잘 몰라 큰 화를 당하는 당뇨병 환자들을 위해 매주 '당뇨병 교실'을 열고 교육을 실시한 지 벌써 1,000회를 맞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서울백병원에서 1983년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열려온 '당뇨병 교실'이 지난달 28일로 1,000회를 맞았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해 낸 이는 이 병원의 내과 임경호(54) 교수. 그의 얼굴에는 지난 21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당뇨병 환자들의 교육과 지도를 해냈다는 자부심이 역력했다.

임 교수는 당뇨병 개설을 개설하게 된 동기에 대해 "20여년 전 당시에만 해도 당뇨병 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일이 잦았는데, 최소한 이런 무지의 소치로 생기는 사고는 막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은 소박했지만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예전에는 당뇨병에 걸리면 회사에서 쫓겨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 병에 걸리면 쉬쉬하고 숨겼는데 이젠 양해를 구하고 병원을 다닐 정도로 인식이 달라져 환자들 스스로의 참여도 높아지는 추세"라며 "앞으로도 의사 직을 그만둘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라고 당뇨병 교실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당뇨병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치료법도 그가 강좌를 개설할 당시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20년 전에는 활과 창, 돌멩이로 전쟁을 했다면 지금은 망원렌즈가 달린 소총으로 싸우는 격"이라고. 사실 1980년대 초에는 당뇨병 치료약이라고 해봤자 돼지와 소에서 채취한 인슐린과 경구약이 고작이어서 다리가 붓는 '지방 이양증' 등 후유증이 심각했지만 요즘은 경구약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부작용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임 교수는 당뇨병 치료법은 크게 발전했는데도 당뇨병을 치료하는 '마음 자세'는 별반 변한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치료를 하다 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수시로 벌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연전에 당뇨병으로 병원을 찾은 50대 중반의 여성 환자의 변에서 이상한 기생충이 발견됐지요. 그 기생충은 사람에게서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에게만 있는 기생충이어서 모두들 의아해 했는데 환자에게 물어보니 '살아 있는 청개구리를 먹으면 당뇨병이 낫는다'는 얘기를 듣고 시골에 내려가 살아있는 청개구리를 50마리를 소주와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임 교수는 아직까지 이런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 환자들에게 먹히는 것을 보면서 당뇨병 교실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직도 해당화, 당살초, 쇠뜨기풀, 날콩, 굼벵이, 상황버섯 등이 당뇨병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맹신해 병을 악화시키는 환자가 적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물론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병을 고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설악산 중턱에 있는 샘터의 물을 매일 마시고 당뇨병을 고쳤다고 주장하는 환자가 있었지요. 그러나 환자의 당뇨병을 고치게 한 것은 그 '신성한' 물이 아니라 그것을 먹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르내리락 하면서 지속적으로 하게 된 운동 때문인데, 그걸 몰랐던 거죠."

그렇다면 '당뇨병 치료에 왕도는 없냐?'는 물음에 그는 거침없이 "배가 고플 정도로 소식(小食)하라. 설렁탕을 먹을 때도 소금 간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싱겁게 먹어라. 적절한 운동을 하라. 최소한의 걷기 운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점심식사를 가급적 멀리 가서 먹어라. 엘리베이터는 타지 마라"라고 답했다.

그는 덧붙여 "당뇨병 환자들이 먹는 당뇨식은 사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들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이라며 "요즘 먹거리가 풍족해져서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이라고 못 박았다. 못 사는 나라의 당뇨병 발병률이 낮은 것도 모두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뇨병 환자들은 병에 걸리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해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 교수는 오히려 환자에게 당뇨병은 '전화위복이 되는 만복의 근원'이라고 위로한다. 다소 괴변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당뇨병에 걸리면 기상·취침 시간이 일정하게 하고, 좋아하는 술도 끊고 적절한 식사와 운동을 하는 '단정한 생활'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병원을 규칙적으로 찾아야 하므로 다른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계기가 돼 오히려 수명을 늘리게 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당뇨병 교실을 수료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엄 교수의 이런 노력에 자극을 받아 자발적으로 '엄나무회'라는 당뇨병환자모임을 만들어 주위의 당뇨병 환자들에게 혈당측정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경험담을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1,000주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당뇨병 교육에 매진해 온 그의 수도자적 노력이 과연 그의 약속대로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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