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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자연유산 1호 '강화도 매화마름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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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자연유산 1호 '강화도 매화마름 군락지'

입력
200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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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는 마치 물 위에 살포시 하얀 눈이 내린 듯했다. 논두렁에 내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이 고여있는 논바닥 가득 손톱만한 하얀 꽃이 앙증맞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따스한 봄볕 아래 꽃잎 다섯 개가 노란 꽃술을 감싸고 있고 물 속에 잠겨있는 줄기와 뿌리는 미나리를 꼭 닮았다.

"이곳에서만 집단으로 자라는 '매화마름'이라는 희귀 식물인데요. 국민들이 기금을 모아 땅을 사들이고 보호하는 시민자연유산 1호입니다." 주민 사재구(63)씨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름 1㎝도 안되는 작은 꽃을 더 가까이 보게 된다.

김포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강화대교를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초지진으로 가다 보면 아스팔트 도로 옆 무논에 매화마름 군락지가 나온다. 경지정리가 잘 된 다른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인 5월 중순인데도 매화마름이 꽃을 피운 자투리 논은 벼 그루터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겨울 모습이다. 환경단체의 안내로 가족과 함께 생태탐방에 나선 아이들은 물 위에 빼곡히 떠있는 매화마름을 둘러보며 마냥 신기해 한다.

매화마름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했던 물풀의 하나였다. 하지만 각종 도시개발로 연못과 습지가 파괴되고 수질오염도 심해지면서 지금은 서해안 일부 지역 논이나 습지에서만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취를 감춰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6가지 중 하나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98년 발견된 강화도 매화마름 군락지는 이 지역 농지 경지정리사업과 저수지 건설로 훼손위기에 처했지만 지난해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다시 명맥을 잇고 있다. 자연·문화유산 보호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자연신탁 국민운동)가 지난해 5월 국민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금한 4,800여만원으로 매화마름이 자라는 논 800여평을 사들이고 논 주인 사재구씨가 112평을 기증하면서 '시민 자연유산 1호'가 됐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증이나 기부를 통해 보호가치가 있는 자연·문화유산을 사들여 미래 세대를 위해 영구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가 매입 보존의 첫 사례인 셈이다.

처음엔 외지인들의 잦은 방문과 땅 매입에 마땅찮아 하던 주민들도 이젠 매화마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농사보다 매화마름 논에 물이 제대로 차 있는지, 꽃은 제대로 피었는지가 더 관심이다. "모내기에 방해만 되던 한낱 무논의 수초가 이렇게 소중한 꽃인 줄 몰랐지요." 논 주인이었던 사씨는 매화마름 꽃이 지고 씨가 다 떨어진 뒤에야 논을 갈아 엎는다. 행여 매화마름이 다칠 새라 이앙기 대신 손으로 모를 내고 남들 다 뿌리는 제초제도 치지 않는다. 논두렁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일일이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뽑는다. 모내기 때면 환경단체 회원들이 모심기를 돕고 사씨가 농약 치지 않고 수확한 무공해 쌀은 회원들이 사간다

이 매화마름 군락지에 지난 16일 일본 후지(富士)산 남쪽 시즈오카(靜岡)현 미시마(三島)에서 매화마름 보전운동을 하는 환경단체 ' 그라운드워크 미시마' 회원 20명이 찾아왔다. 매화마름 보전과 지역발전 노하우를 서로 나누기 위해 방한한 것. 매화마름은 일본에서도 멸종위기에 몰렸으나 92년부터 그라운드워크 미시마가 활발한 보전운동을 펼친 끝에 복원에 성공했으며 현재 시즈오카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13년째 그라운드워크 미시마를 이끌고 있는 와타나베 도요히로(渡邊豊博·53) 사무국장은 "후지산에서 흘러나오는 찬 지하수에서 사는 미시마 매화마름은 깨끗한 물에만 살기 때문에 환경의 바로미터"라며 "매화마름 부활운동을 통해 자연환경이 개선돼 물의 도시 미시마의 명성도 되살아 났고 매화마름을 이용한 각종 관광상품도 개발돼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과 환경단체간 상생(相生)의 협력으로 멸종위기에서 되살아난 매화마름이 강화도의 명물을 넘어 세계적 환경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강화=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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