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골짜기의 작은 암자 '오세암'에는 다섯 살 꼬마의 슬픈 설화가 전해 온다. 앞 못 보는 누나를 이끌고 엄마를 찾아 나선 길손이가 스님의 도움으로 적막한 산사에 머물게 된다. 천진난만한 이 말썽꾸러기가 나름대로 엄마를 그리며 수행을 하다가, 폭설로 인해 뜻밖에 암자에 고립된다. 봄이 되어 암자를 찾아보니 길손이는 죽음과 함께 부처가 되었다는, 눈시울을 적시는 이야기다. 그 후 이 암자는 '오세암(五歲庵)'이라고 불린다. '오세암'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맑고 순수한 감동을 선사하던 고(故) 정채봉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동화다. 1983년 발간된 이래 수십만 독자를 울렸다.■ '오세암'은 지난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색감이 따스하고 인물은 다감하다는 호평과는 달리, 10만 관객의 흥행을 거두는 데 그쳤다. 이 '오세암' (감독 성백엽)이 12일 세계 최고권위의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축제관객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화제작으로 최고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한국의 사계가 산수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고, 그 속에서 순수하게 엄마를 그리는 천진스런 오누이가 세계를 울린 것이다. 낭보를 들으며, 국내외 관객의 문화와 감각의 차이를 실감한다.
■ 오세암 같은 산사(山寺)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통문화와 정신이 명맥을 이어가는 산사는, 일상에서 지친 이들이 찾는 위안의 공간이다. 시인들은 흔히 시(詩)를 가리켜 '언어(言)의 절(寺)'이라고 신성시하기도 한다. 산사에서는 존재와 사유의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처마 끝에서 댕그렁 거리는 풍경(風磬) 소리도 다른 언어처럼 들려 온다. '눈을 뜨고 자는 붕어처럼 졸음을 쫓아내며 수행에 정진하라'는 격려가 담긴 풍경의 불규칙한 댕그렁 거림은, 적막과 적막을 이어주거나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소리에 산사의 호젓한 풍경은 더 그윽해진다.
■ 올해는 유난히 더울 거라는 여름이 시작되자, 산사에서는 다양하고 이채로운 수련회를 마련해 놓고 있다. 여러 산사에서 새벽 목탁소리를 듣고 참선과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행사와 함께, 대중적인 영화제들도 열린다. 오대산 월정사는 19, 20일 대웅전 앞에서 '달마야, 서울 가자' 등을 보여주는 산사영화제를 개최한다. 경기 양주의 육지장사도 같은 기간 불교영화축제를 연다. 첫날 상영작이 '오세암'이다. 서늘한 산사에서 영화를 보고 참선도 하면서, 풍경 소리에 더욱 깊어 가는 밤을 맞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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