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7월22일 런던에서 태어나 1930년에 작고한 윌리엄 아치볼드 스푸너는 옥스퍼드대학 뉴칼리지에서 고대사·철학·신학을 가르치며 학장까지 지낸 성공회 성직자다.한 번은 빅토리아여왕도 끼인 만찬에서 그가 "우리 별난 학장님을 위해"(for our queer old dean) 건배를 외쳤다. 사실 그는 "우리 경애하는 여왕님을 위해"(for our dear old queen) 건배를 하려 했으나, dear queen(경애하는 여왕)의 첫 소리 /d/와 /k/를 맞바꿔 queer dean(별난 학장)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스푸너는 이런 두음전환(頭音轉換)을 통한 말실수를 일상으로 저질렀다. 그는 '불을 밝히자'(light a fire)고 말하려다 '거짓말쟁이와 싸우자'(fight a liar)고 말했고, '여러 톤의 흙'(tons of soil)을 '노역(勞役)의 자식들'(sons of toil)로 바꿨다. 역사학 강좌를 빼먹은(missed history lecture) 학생에게는 괴기 강좌를 야유(hissed mystery lecture)했다고 야단치기도 했다. 스푸너가 "벌레를 두 마리를 맛보다니!"(You've tasted two worms!) 하고 한탄할 때, 학생들은 이 말을 "두 학기를 낭비하다니!"(You've wasted two terms!)로 번역해 들어야 했다. 그 뒤 언어학자들은 이런 두음전환을 스푸너리즘(spoonerism)이라고 부르게 됐다.
스푸너리즘은 한국어에도 있을 수 있다. 식당에서 '삶은 닭'을 주문하려다 '닮은 삵'을 주문할 수도 있고, '소리를 작게 하라'고 말한다는 것이 '조리를 삭게 하라'가 돼버릴 수도 있다. '서러운 돈 좀 씻으라'는 말은 '더러운 손 좀 씻으라'는 말일 터이다. 미운 놈의 '숨을 꺾는' 것과 '꿈을 섞는' 것, 어느 쪽이 더 현명할까?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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