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미는 인생의 벗이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으로 그리고 만화가로 1인 3역의 바쁜 삶을 사는 이두호(李斗號·61)씨에게는 낚시가 그런 친구다. 인기만화 '머털도사'와 '임꺽정'의 작가인 이씨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하면서 즐거움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그가 태어난 곳은 경북 고령군 다산면 상곡동 낙동강변. 초등학교때 어엿한 조사(釣士)가 돼 있었으니 조력으로 50년을 넘는다. 그를 낚시의 세계로 인도한 세 살 위 형은, 지금도 환갑이 넘은 동생과 가끔 낚싯대를 드리우며 옛 이야기를 한다.
이두호씨는 중·고교 시절 그리고 제대 후에도 틈만 나면 물로 달려갔다. 그런 그가 한동안 낚싯대를 접은 적이 있다. 결혼(1969년) 직후다. "먹고 살기 위해 다들 열심히 일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아, 나보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일은 않고 낚시나 하러 다닌다고…"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도리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낚시에 더 빠져들었다. 고우영 김원빈 박수동 신문수 오성섭 윤승운 이정문 지성훈 허어 등 내노라 하는 만화가들이 낚시 친구들이다. 이들은 70년대 중반 심수회(心水會)라는 모임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낚시에 매달렸다. 팔팔한 젊은이가 모였으니 술은 또 얼마나 마셨을까. 충남 서천군 배다리 저수지를 찾았을 때다. 햇살이 따가운 한 여름날 오후 4시. 낚시를 미루고 찻길 옆에서 소주 병을 땄다. 서너 시간 만에 2상자, 24병을 몽땅 비웠다. 부근 구멍가게 주인이 "정말 잘 마신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두호씨는 "낚시도 낚시지만 친구들과 어울린 것이 더 좋았다"고 회상했다.
80년대 중반에는 박수동씨가 급부상했다. 낚시에 큰 재미를 못 붙인 그가 28㎝ 붕어를 올린 뒤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가 낚시 욕구를 함께 푼 사람이 이두호씨였다. 한 달에 보름 이상을 낚시터에서 함께 보내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심수회 활동이 좀 잠잠해졌다. 밤 새워 낚시하기에 체력이 부담스러웠고, 일부는 골프에 빠졌다. 그 무렵 만화가 이우정 이향원 한재규씨 등이 '비린내'라는 낚시 모임을 만들자 이두호씨는 그들과도 어울렸다. 나중에는 심수회, 비린내 구분없이 파로호 충주호 대호만 등으로 출조했다.
그는 낚시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으면서도 인간세상과 비슷한 점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잔챙이 일수록 입질할 때 설치는 편입니다. 찌도 촐랑거리듯 흔들립니다. 하지만 큰 물고기는 크게 한번 출렁거릴 뿐입니다. 사람도 그래요. 철없을수록 까불고, 생각이 깊을수록 무게가 있지요."
90년대 초반 고교생 막내와 밤낚시를 떠난 적이 있다. 물고기를 잡다가 한마디 던졌다. "너 시험 못 보았다며." "예." "그런데 공부는 못해도 그림은 잘 그린다더라. 정말이냐." "예." "그럼, 그림 한번 열심히 그려보아라." "예." 대화는 무뚝뚝하게 이어졌지만 아들은 그 뒤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낚시가 부자의 마음을 열어 준 것이다.
그 역시 가족의 반발이 컸고 그래서 낚시 가방을 세번이나 버렸다. 한번은 수장했고 , 또 한번은 쓰레기통에 던졌다. 누구든 가져가라고 가방째 길거리에 놓았던 적도 있다.
가족의 반대는 사라졌지만 요즘은 정말 체력이 딸린다. 밤낚시를 하면 졸음이 밀려온다. 그래도 낚시 생각이 나면 혼자서 또는 같은 동네 후배 만화가 탁영호씨와 간다. "그렇게 낚시를 다녔어도 '괜히 왔구나. 다음에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손끝으로 떨림이 전해오는 그 순간, 희열이 솓구칩니다. 힘이 남아있는 한 낚시는 계속 할 것입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수질 나빠져 한 마리도 못 잡는 날 태반…낚시꾼 책임 커"
이두호씨는 80년대 초 경기 의왕 부곡저수지에서 붕어 등을 300여 마리나 잡은 적이 있다. 여름날 대낮에 올린 성과였다.
그때만 해도 파로호든, 충주호든 씨알 굵은 붕어 수십 마리는 쉽게 올렸다. 파로호에서는 호수물로 밥도 짓고 커피물도 끓였다.
지금은 어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공치는 날이 태반이다. 돈 주고 사간 생수로 밥 해먹는다. 이두호씨는 "수질이 너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낚시꾼의 책임도 크다. 떡밥이 우선 문제다. 미끼로 쓰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고기가 모이도록 밑밥용으로 뿌려대 물을 더럽힌다. 사용하고 남은 떡밥과 낚시줄, 플라스틱통, 비닐도 던져두고 온다. 엉킨 낚시줄을 방치해 물고기가 걸려 죽는다.
그래서 이두호씨는 요즘 낚시터 쓰레기는 반드시 치운다. 다행인 것은 그를 따라 치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두호씨는 "계절과 어종, 크기, 산란 여부 등에 따라 낚시를 제한하는 면허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는 물을 오염시키지 않겠다는 낚시꾼의 자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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