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함과 절제를 동시에 갖출 수 있을까.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에 나온 김혜수(34)는 벗으면서도 벗지 않는 배우다. 찢어진 청바지와 가지런한 손톱이 그걸 말해준다. 손톱은 영화나 일상 모두 매니큐어 없는 그대로다. “일할 때 때가 끼거든요. 바싹 잘라요.” 영화에서 경계선장애를 앓고 있는 지수는 오래 전 잃어버린 사랑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고, 현재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 쇼핑을 하다가도 발작처럼 폭발하는 지수의 광기 속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김인식 감독은 김혜수의 내면에 잠복한 광기를 관객에게 선물한다. 이런 김혜수를 우리가 본 적이 있던가. 1985년 데뷔 이후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는 없었다.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감독이 직접적인 설명을 싫어 하시니 내가 뭘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처음엔 어려웠죠.” 감독에게 ‘과거의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게 진부하지 않느냐’고 물은 것도 그래서였다.
“사랑은 주관적 경험이며, 따라서 지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감독의 견해에 동의하고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얼룩말 무늬, 가슴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원피스 등 파격적인 의상과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전인권식 머리 스타일이 튈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김혜수 못지않게 영화도 조명의 질감과 현란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생각하는 제 이미지가 어찌나 화려한지, 그래서 부담스러웠고 경계도 했어요. 지수의 옷이 아닌 김혜수의 옷으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걱정했죠.
처음엔 황폐한 지수의 정서를 과장되게 보여줄 때만 그렇게(야하게) 나가는 줄 알았다가 그게 ‘기본’이어서 놀랐죠. 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는 정답이 될 수 없어요.”
지수는 자기과시가 강하지만, 그것은 과거로부터 받은 고통을 감추는데 쓰인다. 지수의 예민함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기도 했다.
“예민하게 몸을 만들었어요. 원래 불면증이 있는데다가 더 잠을 안 자니 눈 밑이 퀭했죠. 하루 이틀 일부러 안 자면 예민해지잖아요.”
건강미인과 ‘미친 여자’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나 될까. “건강하게 생겼죠. 그늘 없고, 미소 짓고…. 웃긴 거죠. 본의 아니게 건강해져 버렸죠. 제게 딸려오는 수식어만큼 건강하지는 않아요.
저혈압이 있어서 ‘장희빈’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을 찍으면서 목도 금방 상하고, 손도 떨렸어요.”
이 작품이 변신이거나 연기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까. “남들이 인정하거나 안 한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아요. 내가 날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파격적 노출에 놀랐다고 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
보는 사람이 알아서 느끼는 거죠. 할만 해서 한 거고요. 감성과 이성 그리고 몸이 배우가 가진 전부 아닌가요.”
/이종도기자 ecri@hk.co.kr
● 영화 ‘얼굴 없는 미녀’
도발적인 매력을 풍기기는 하지만 지수(김혜수)는 지병인 경계선 장애로 마음 고생이 심하다. 정신과 전문의 석원(김태우)은 자신의 환자였던 지수를 1년 뒤에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을 느낀다. 최면을 통해 지수의 과거를 치료하려던 석원은 치료와 사랑 사이에서 의사의 본분을 망각한다.
‘로드무비’를 만든 김인식 감독 작품. 지수와 석원, 지수의 남편과 남편의 애인 사이를 축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형식의 로맨스다.
현란한 카메라, 감각적인 조명, 정성과 안목이 느껴지는 소품과 의상 등 비주얼이 뛰어나다. 몇차례 등장하는 김혜수의 전신 누드와 섹스 장면도 눈길을 끈다. 6일 개봉. 18세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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