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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원 정치와 생산성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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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동원 정치와 생산성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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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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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회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경제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가장 중요한 경제 현상들의 원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을 갖고 있지못하다.대표적인 것이 경제성장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함수를 제시한 공로로 198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소로우는 경제성장을 생산성, 자본, 노동의 비례함수로 보았다.

그의 경제성장 함수는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생산성 증가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지만, 생산성 증가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직도 연구과제로남아 있다.

사실 생산성 증가의 묘안을 즉각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할 나라가 어디에 있으랴. 그만큼 생산성 증가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은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로우의 공헌은 경제성장에서 생산성과 노동, 자본의 투입이 각각 어떠한역할을 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 것에 있다.

소로우의 경제성장 함수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즉, 생산성 증가에 의한 경제성장이 그 나라의 교육, 역사, 전통의 복합적결과인 과학기술 수준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난하고 장기적인 해법이라면,자본의 동원과 노동의 통제에 의한 경제성장은 단기적이고 비교적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투입요소의 대대적인 동원과 집중을 통한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낸 경제성장이 동원을 통한 발전의 세계적인 예이고 대만이나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스탈린 시절 소련의 경제성장, 소련을 모델로 삼았던 50년대와 60년대의 동유럽과 북한의 경제성장도 생산성 증가보다는 자원 동원에의존했던 성장이었다.

문제는 투입요소의 동원에 의한 경제성장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바로 이 점에서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모델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 정도는 남미국가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97년 아시아 외환 위기에 앞서서 경제위기 가능성을 예견했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국가자원 동원에 의한경제성장, 그리고 경제성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써 인권 탄압과 노동 통제를 정당화하던 정치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리더십은 분명히 국가자원 동원에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룩한 중화학공업 기반과 경제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정당히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동원의 정치가 오늘날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아니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투입요소의 국가적 동원과 강제적 배분이 벌써 한계에 도달했는데도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현재의 어려운 경세상황에 대한 대중적 좌절의 표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좌절에 기반한 대중적 향수가 동원의 정치로 회귀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되어서는 안된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시작된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보자면 생산성 증가를 견인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은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경제성장이 절실한 과제로 남아있지만 이제 그 경제성장은 생산성 증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생산성증가는 탄탄한 과학기술, 양질의 교육, 시민적 신뢰 등 여러 가지 요인에의해서 가능할 것인데 어느 것 하나 단기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생산성의 정치, 생산성을 견인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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