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예비신청이 무산됨에 따라 이 사업은 '공론화'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이렇게 되면 여당과 반핵시민단체가 합의한 사회적 협의기구에서 원전시설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기구 구성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들이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어 기구 구성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협의기구가 가동된다 해도 여기에 참여하는 각 주체가 원전시설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갖고 있어 실제 부지 선정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우선 시민단체들은 협의기구 구성을 위해 부안 유치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단 정부의 공식입장은 "부안이 완전히 물건너간 게 아니다"라는 것이지만 곳곳에서 유연한 태도가 감지되고 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도 이날 "부안의 경우 현행 절차에 따른 주민투표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혀 부안에 집착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의 또 다른 전제조건인 신고리 1·2호기의 건설중단. 이에 대해서는 산자부가 "원전 계획 전반과 관련이 있어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어 합의 가능성이 희박해보인다.
두가지 문제가 해결될 경우 여당과 시민단체들의 논의대로 사회적 합의기구는 1개월 이내에 구성돼 1년여 동안 합의를 모색하게 된다.
이 기구에서는 현재 사용 중인 각 원전의 임시보관시설이 언제 포화상태가 되는지, 원전시설은 안전한지, 원전시설 부지선정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지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나아가 합리적인 원전의 비중, 대체에너지 도입 등 정부의 기본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제들은 정부와 시민단체가 수십년간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들이어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민단체는 궁극적으로 원전을 포기하자는 것이고 정부는 원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어서 이 간극을 메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 전북·부안 반응
정부가 16일 사실상 부안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유치 포기선언을 한데 대해 전북도 등 유치 찬성측은 거세게 반발하고 반대측은 환영하는 등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강현욱 전북도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1년 2개월동안 정부 방침에 적극 협조하고 따라온 전북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발표"라며 "'부안 백지화는 없고 부안 기득권을 인정하겠다'고 한 산업자원부 장관이 하루 만에 약속을 번복한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강 지사는 이어 "이번 발표를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만큼 정부는 부안 주민투표를 포함한 향후 구체적인 일정을 전북도민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면서 "만일 부안이 백지화 된다면 그 동안 부안 주민들의 갈등을 야기한 모든 책임과 추후 발생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여온 부안국책사업추진연맹도 "지난해 7월 부안군수가 유치신청서를 내자 대통령이 직접 격려 전화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내팽개치는 것은 정부의 무원칙과 무소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원전센터 유치를 추진했던 위도발전협의회 정영복(51) 회장은 "정부를 믿은 우리가 잘못이다. 유치를 포기하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반면 반대 시위를 주도해온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와 반대 주민들은 "완전한 백지화 선언은 아니지만 정부의 입장이 크게 진전됐다"며 일제히 환영했다.
핵대책위 고영조(47) 대변인은 "잘못된 결정을 내려 혼란을 가중시킨 산자부와 부안군 등 관련자들은 군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최수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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