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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여워

입력
2004.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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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발칙하기 그지없는 영화다. ‘씨’만 뿌렸지 거둘 줄 모르는 아버지 장수로(장선우)의 무책임함이 우선 눈에 거슬릴만하다. 963(김석훈), 개코(선우), 뭐시기(정재영)라는 괴이한 이름의 배다른 형제들이 나이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를 찾아온 순서대로 형, 동생으로 지낸다는 설정도 고약하기 짝이 없다. 둘째 개코가 적적한 아버지를 위해 같이 놀던(!) 여자 순이를 데려 오고 963과 뭐시기가 흑심을 품는 것도 엽기적이다. 네 부자 사이를 자유롭게 떠도는 순이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너무 먼 인물. "나 멘스 했어" 라며 개코에게 치근거리는 어린 소녀의 모습도 뜨악하다.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명칭만 남아있을 뿐 도덕성은 전혀 갖추지 못한 등장 인물들의 이런 행동은 언뜻 붕괴 직전의 가부장제를 조롱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심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저 발랄하게 살아가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의 적나라한 행동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래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네 부자가 벌이는 기이한 오각관계가 관객들에게 패륜으로 다가서진 않는다.

화려한 네온 사인이 빛나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황학동이라는 남루한 공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판타지로 그려내는 연출솜씨도 ‘귀여워’가 사정없이 막 나가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공원을 만든다고 사람을 마구 쫓아내는 팍팍한 현실에서 누구나 탈출구로서 하나의 욕망을 꿈꾼다. ‘귀여워’는 삭막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들을 위해 한바탕 펼쳐지는 굿판과 같은 영화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 ‘나쁜 영화’ 등에서 연출부 생활을 한 김수현 감독 데뷔작. 2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귀여워’에 관해 알고싶은 7가지

‘귀여워’는 정통적인 영화 화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퍼즐과도 같은 작품이다. 22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를 마치고 관객과 대화를 나눈 김수현 감독의 답변을 빌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풀어본다.

1 장선우 감독과 마찰은 없었나.

장 감독이 시나리오를 워낙 마음에 들어 해 작업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정사 장면을 촬영할 때 장 감독이 부담을 많이 가졌다. 극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빼지 못하고 강행했는데 그때는 분위기가 좀 싸늘했다.

2 도시 풍경을 왜 만화같이 그렸나.

서울 황학동의 황량한 모습과 그 속에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함께 섞고자 했다. 그것이 만화 같은 판타지로 표현되었다.

3 마지막에 건물이 무너지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은 모호한 욕망의 소유자이다. 과정과 동기는 다르지만 욕망의 목표점은 동일하다. 우화처럼 건물을 없애는 것으로 욕망의 실현을 보여주고 싶었다.

4 제목이 왜 ‘귀여워’인가.

네 남자는 세상에 삐딱한 시선을 갖고 살아가는데 그 모습이 유치해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순이는 그들을 포용하고 사랑해준다. 그런 순이야말로 귀여워해줄 만한 인물이라 생각해 ‘귀여워’라는 제목을 지었다.

5 등장인물 이름 어떻게 지었나.

퀵서비스 업계에서는 고유번호로 사람을 지칭한다. 963은 김석훈 휴대폰의 시작 번호다. 여기에 후까시라는 이름을 붙여 캐릭터의 성격을 강화했다. 개코는 견인차 기사답게 교통사고 냄새를 잘 맡는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다. 취재하다 만난 건달이 있었는데, 뭐시기라는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뭐시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6 순이를 얻은 장수로는 왜 사라졌나.

홍보 문구처럼 이 영화는 네 부자간의 사랑쟁탈전으로 출발해 진행되지만, 결국엔 사랑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순이와 결혼한 장수로는 세상에서 얻고 싶었던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떠난다.

7 감독의 인생경험이 영향 주었나.

방랑생활을 하면서 우연치 않게 퀵서비스와 견인차 운전을 했다. 이래 저래 영화 만드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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