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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 가보셨나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점술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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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 가보셨나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점술街’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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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골목골목 들어찬 외제 차량, 트렌디한 퓨전 음식점, 뷰티샵과 고급 옷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는 최첨단 유행의 거리인 이곳이 점술가(街)로 변하고 있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손님을 끄는 사주카페, 타로점 구슬점 등 신세대들의 감각에 맞는 점술집, 밝고 환한 분위기의 역술원 등이 무려 70곳 가까이나 성업중이다.로데오 거리가 점술가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무렵.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로데오 상가에 젊은 역술인들이 운영하는 신세대 취향의 점술집 ‘점술왕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최근 3~4년 사이에 이 주상복합 상가에는 8, 9곳의 점술집들이 더 들어섰다.

출입문에 ‘○○○선생님, 어떻게 제 맘속을 그렇게 잘 들여다보시나요’라고 적힌 인기여배우의 글귀와 사진이 20~30대 젊은 층들을 자극할 만하다.

내부에 흐르는 은은한 탄두라(이슬람 무용) 음악, 아기자기한 색감의 벽지와 탁자 등은 고급 카페 분위기다. 타로카드 수정구슬 육효 패철(점술용 나침반) 등 각종 점술 기구와 사주가 적힌 부적, 인형 등의 소품이이곳이 점집임을 알게 한다.

복채는 점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2만~3만원 정도로 대학로 이대 홍대 주변의 기존 점술거리보다는 다소 비싼 편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김유민(22)씨는 "다른 곳보다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친절하고 자세하게 상담해줘 한 달에 한 번 이상 단골 점술가를 정해놓고 찾아온다"며 "사주는 싼 곳에서 보더라도 애정운은 복채가 비싼 이곳이 더 잘 맞출 것 같아 반드시 이곳에서 본다"고 웃으며 말했다.

로데오 거리 점술가를 찾는 이들은 주민 상당수가 해외 체류 경험자들인 이 지역 특성상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 해외 투자로 한몫 잡으려는 재력가 등이다. 한류 열풍을 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대개의 점집들은 연말연시가 성수기지만 이곳은 유학생들의 방학기간인 6~8월 사이에 1년 매상의 30% 이상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 상담이 가능한 20~30대의 젊은 점술사들을 고용한 곳, 해외교포상담실과 유학전문상담실을 마련한 곳, 통역사까지 고용한 점집 등이 지역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점술점 타롯’의 풍수지리 전문가 김영선(38)씨는 "압구정동은 지세로 봐서 해외 운과 우리 운이 드나드는 지점"이라며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미국 영국 등의 풍수지리는 물론 현지 학교에 관해 웬만한 유학원 사람들보다 더 훤하게 꿰뚫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호황기 점집에는 결혼 운, 부부 문제, 고부 갈등과 관련된 문의가 많은 반면 극심한 불황이던 올해 전국의 점집들에서는 생계형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실업자가 되지는 않을까’ ‘어떤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의가 아니라 ‘불황기인 요즘에도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인가’ ‘직장을 외국에서 구할 것인가 국내에서 구할까’ ‘불황기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문의가 잇따랐다고 점술가들은 전했다.

불황에 점집은 오히려 성황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특징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로데오 거리는 점 보는 내용부터 다른 모양이다.

1990년대의 ‘오렌지족’과 ‘야타족’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섬이었던 로데오 거리. 시인 유하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며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 불렀던 압구정동. 21세기의 또 한 해가 바뀌는 지금 이곳은 가진 것 많아도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는 무한한 인간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점술의 거리로 다시 변모하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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