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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IT 코리아] (6)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 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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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IT 코리아] (6)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 짜라

입력
2005.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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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이 두려워서라도 드러내놓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지난해 한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는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영향력을 이렇게 말했다. 당시는 정통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 사업이 ‘서비스 기술 표준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통상 논리에 부딪혀 좌초된 직후였다. 위피 단말기 개발을 담당하던 그는 "업체들이 (위피가) ‘실패한 정책’이라며 꺼리는 기색을 보이기라도 하면 (정통부가) 오히려 더 밀어붙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 달라진 정통부 = 정통부가 한국 IT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통부는 정보화, 정보통신, 전파방송관리는 물론 우편 관련 법률 및 정책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또 2조원 규모의 정보화촉진기금을 통해 중소 IT업체들의 육성을 도모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을 통해 IT 산업 기반 조성에도 관여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IT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된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 인프라의 성공적인 구축도 정통부가 일궈낸 돋보이는 성과다.

최근 부처 발족 10주년을 맞이한 정통부는 8대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 동력을 의미하는 ‘IT 839’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에도 한국 IT산업을 이끌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그러나 "정통부가 IT 839 정책의 성공을 바란다면 고답적인 태도부터 쇄신해야 한다"는 고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출신의 업계 관계자는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IT산업의 상황은 IT에 관한 한 황무지나 다름없던 10년 전과는 다르다"며 "지금이야말로 정통부의 탈바꿈이 절실한 때"라고 지적한다. 민간 부문(시장)이 활발한 경쟁을 통해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을 갖추게 된 만큼, 정통부가 90년대에 보여온 ‘로드맵형’ ‘규제형’ 정책만으로는 IT산업의 자율적 발전과 궤를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IMT-2000의 교훈 =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던 ‘비동기식 IMT-2000’, 즉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서비스의 ‘정책 실패’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꿈의 3세대 이동통신’으로 불렸던 WCD MA 서비스는 2000년 사업자 선정 이후 당초 목표인 ‘2004년 상용화’ 시점을 넘긴 채 아직도 표류 중이다. 올 연말께 수도권 중심의 상용화가 예정된 가운데, 정통부는 서비스 지연의 이유를 ‘사업자들의 투자 기피’탓으로 돌리고 있는 반면, 업계 전문가들은 ‘정통부의 정책적 근시안이 화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통업체들의 투자 기피는 사실상 예견됐다는 점에서 정통부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다. SK텔레콤과 KTF는 2000년부터 2세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망을 2.5세대(CD MA2000 1x)로 업그레이드 하는데 나서 지금까지 도합 5조원(SK텔레콤 3조1,000억원, KTF 1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같은 기간 WCDMA 투자액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로 인해 2003년부터는 CDMA로도 고속 무선인터넷, 동영상, 화상 전화 등 WCDMA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서비스를 앞당겨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이통업체간 서비스 경쟁이 불붙으면서 기존 2세대 망의 고도화 작업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며 "이로 인해 WCDMA만의 차별성이 무너지고, WCDMA 투자가 졸지에 ‘중복 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 정책 실패 사례 = 정통부는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정책적 실수를 연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선 충분한 정책적 고려 없이 이통업체들의 2.5세대 서비스 진출을 쉽게 허가했다는 점이다. KIS DI 등이 2001년을 전후해 "WCDMA와 CD MA2000 서비스간 (차이점에 대한) 해석의 부재가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정통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SK텔레콤과 SK IMT, KTF와 KT ICOM 간 합병을 허용함으로써 각각의 사업자를 분리한다는 당초의 원칙을 철회, 궁극적으로 WCDMA 투자가 지연되는 결과를 불렀다.

WCDMA 활성화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 정통부가 진력하고 있는 한국형 휴대인터넷(와이브로·WiBro) 사업도 악재다. 와이브로는 무선인터넷 중심의 서비스라는 점에서 WCDMA와 중복될 뿐만 아니라, WCDMA보다 2~3배 가량 빠른 초당 1~1.5메가비트(Mbps)급의 데이터 전송능력을 갖고 있다. 더구나 서비스 요금이 부분정액제로 저렴한데다 인터넷 전화 솔루션을 이용해 사실상 전화 착발신도 가능하다. 이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와이브로는 더 진화한 ‘3.5세대’급 서비스에 해당돼 중복투자 논란과 함께 WCDMA 서비스에 적잖은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 미래 내다봐야 = 정통부는 그러나 여전히 WCD MA 정책에 대한 ‘실패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통부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WCDMA 정책에 대한 ‘판단 유보’를 요청했고, 이후에도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업계에 조기 투자를 종용하기에 바빴다.

IT 산업계는 정통부의 이 같은 아집이 IT 정책 수립 과정에서 미래 지향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유선통신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과 산업의 자연적인 발전 경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정통부가 만에 하나 ‘정책 실패’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 드라이브를 강요한다면 IT산업 경쟁력 제고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시장의 외면으로 위피나 WCDMA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정책적으로 강요한다면, 이는 기업에 2중, 3중의 어려움으로 작용해 경영부실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산업의 진화 경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관건은 정통부가 미래를 ‘제시하는’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그간의 ‘개발 주도형’ 대신 ‘시장 친화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 몸집 커진 정통부/ 정부, 개혁 칼 댈까

올해로 부처 출범 10년을 맞은 정보통신부는 내부적으로도 새로운 역할론을 정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시장 경제와 시민 사회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참여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선진국형의 작은 정부가 되려면 민간 부문에 대한 정부 부처의 개입은 민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통부는 더 많은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통부는 진대제 장관 취임 이후 유·무선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고유 영역 뿐만 아니라 지능형 로봇과 반도체, 첨단 IT제품 등 소위 디지털 산업 분야까지로 정책적 역량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정통부가 내놓은 IT 839 정책도 표면적으로는 ‘민간 주도형 IT산업 발전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같은 전략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정통부가 주도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민간 부문 역시 이미 정통부의 리더십에 길들여져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정통부의 정책적 종용이라는 ‘멍석’이 깔리지 않는 한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통부는 이밖에도 IT 신성장 동력 발굴에 나서는 한편 소위 ‘IT 뉴딜’로 불리는 ‘디지털 국력 강화 대책’을 내놓는 등 기존의 정부주도형 산업발전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듯한 인상이다.

이 때문에 타부처가 정통부와 정책적 마찰을 빚으면서 정통부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거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놓고 재정경제부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통부와 의견 갈등을 빚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공정위는 직권으로 이통사들의 요금 담합에 대한 조사를 벌이면서까지 한때 정통부와 불편한 관계를 연출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정통부 개혁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당내 한 고위 관계자는 "정통부 출범에 관여한 당시 오명 부총리의 생각처럼 IT산업 중흥이라는 ‘한시적 역할’이 끝난 만큼, 산업육성 기능은 별도의 부처로 독립시키고 시3장규제 기능은 통신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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