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나 사건사고가 워낙 많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이 제대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 하나가 공공서비스를 어떻게 시민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다.
불평등과 빈곤은 가구소득이나 고용여부 만이 아니라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서비스에의 접근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복지제도도 국가가 빈곤층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의 공공서비스는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이에 대한 수요는 급속하게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관련 예산 확보 뿐 아니라 이런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공공서비스 제공을 민영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는 현재 10% 수준인 공공의료를 30%까지 확대하고, 공교육·공보육 체계를 강화하고, 직업상담사와 복지사는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공교육·공보육·공공의료체계의 강화는 구두선으로 그치고, 공공고용서비스에 대해서는 민간위탁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공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민간에 위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론적·학술적이면서도 정책적·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다. 1980년대 이후 영국, 미국,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이 공공서비스 전달체계에 시장메커니즘을 도입했다. 정부는 재원만 조달하고 민간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준시장(quasi-market) 방식이 많이 적용됐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게으르고 고압적인 공무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시장에서 풀어보려 했지만 시장도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비용을 절약하고, 소비자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적절한 기준을 확립하고, 서비스 접근의 공평성을 높이자는 공공서비스 개혁의 목표는 쉽게 달성되지 못했다. 개혁을 추진한 정부는 비용을 크게 절감했다고 주장하지만 비용절감에 따른 서비스 질의 저하, 정부와 서비스제공자 사이의 불완전한 계약과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과 모럴 해저드, 막대한 거래비용, 진입과 퇴출의 어려움 등으로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사실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은 우리가 먼저라고 할 수 있다. 민간위탁으로 이루어진 운송서비스나 직업훈련의 경우 영세운송업체나 영세학원 등 영세서비스사업자의 난립과 과잉,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 심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서비스와 고용의 질을 현저하게 악화시켰다. 공보육보다 민간에 대한 보육료 지원으로 계획돼 있는 보육확대 방안이나 공공고용서비스의 민간위탁 방안도 역시 비슷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민영화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공공부문보다는 민간기업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에서 살아가는 일반 시민보다는 지식인과 정책담당자의 확신이다. 또 시장에 대한 경험이나 시장에서 확인한 결과보다는 이론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막연한 기대에 기초하는 확신이다.
우리의 공공부문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 능력에서 더 떨어져 있다. 시장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때까지라도 공공부문은 공공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은 시장에서 중요한 기준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나 공무원들은 민간위탁이라는 안이한 방법에 안주하려 들지 말고, 공공부문 내부에 경쟁과 평가의 메커니즘을 도입하여 효율적인 공적 서비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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