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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자녀교육 첫째 ‘부부싸움 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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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자녀교육 첫째 ‘부부싸움 안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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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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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는 자주 부부싸움을 한다. 그 때마다 집안 물건을 다 집어던지고 난리가 아니다. 둘 다 꼭 악마 같다. …… 내가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둘 다 ××× 싶다."

절망의 깊은 늪에서 절규하는 듯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제 고3이 되는 한 남학생이다. 필자가 연전에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조사한 바 있는데, 대상 아동·청소년들의 약 30%는 부모의 부부싸움을 최악의 스트레스 사건으로 손꼽았다.

사실 부부싸움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빚어지는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에 제삼자가 ‘감 놔라, 대추 놔라’ 조언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부부의 친밀도가 자녀들의 인성, 나아가 학습능력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전혀 모른 채, 부부싸움을 일삼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참아야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한번 감정의 홍수 상태에 빠져들면 흥분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폭발하여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격한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허탈한 슬픔이 밀려오곤 한다. 그 때쯤,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에게 뒤늦게라도 ‘미안하구나’ 사과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대문을 박차고 집을 나가버리거나, 회사를 때려치울 거라고 엄포를 놓거나, 혹은 잘못된 인연이라 한탄하며 갈라서리라는 결연한 다짐을 내보일 때 자녀들의 심정은 어떨까? 한술 더 떠 다같이 죽자고 협박을 하거나, 부부간에 실제로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그 때 자녀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

아무리 막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부부싸움을 벌이는 당사자들은 자신과 상대방의 한계 감정 수위를 어느 정도는 예측하는 법이다. 어떤 말이 진심이고, 어떤 말이 허풍인지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륜이 얕고 경험이 적은 아이들로서는 부모들이 내뱉는 말의 진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모든 행동과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안절부절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된다.

"부부싸움이 대판 벌어지더니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너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황당, 충격이었다."

부부간의 싸움은 자존심과 감정의 대립이 주된 원인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생존과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 요소로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자녀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성격을 부모들은 좀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존심이 상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서글픔’이지만, 생존과 안전이 위협받을 때 솟아나는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이다. 때문에 심각한 부부싸움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심적 고통을 싸움 중에 있는 어른들의 것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어?"라고 자위하며 스트레스에 비교적 탄력적으로 대처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부모님이 이혼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고아원에 보내지나?"하는 현실적인 불안감에 휩싸인다. 자녀들은 부모의 부부싸움을 묘사할 때 흔히 ‘절대적, 절망적, 충격, 죄악, 증오, 파탄, 파멸’과 같은 최상급 표현들을 쓰는데, 부부싸움은 그만큼 아이들에게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스트레스가 누적된 아이들은 집중력 손상, 자신감 결여, 얼빠짐 등의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거나 숨 가쁨, 천식, 근육의 긴장 같은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학습능력 감퇴, 흡연이나 음주, 폭식, 수면의 증가 또는 감소와 같은 행동 반응을 보이거나, 나아가 불안 장애, 성격 장애, 성적 일탈 및 성 장애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 때문에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 되었으며, 행복, 기쁨, 웃음이 내게서 사라지게 되었고, 고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젠 한마디로……, 난 혼자인 게 좋다."

한 남학생의 슬픈 독백은 부모 역할의 막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부부간의 화목’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가 밝고 건강하며 자존감 있떪?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중한 가정을 일구어나가는 일만큼 긴요한 자녀교육이 또 있을까?

신규진 선생님 서울 경성고 전문상담교사·‘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저자 sir90@cho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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